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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좋은글

설날, 말은 딱 반으로 줄이고 대신 미소는 두 배로 날려요

by DAVID2 2014. 1. 30.

설날, 말은 딱 반으로 줄이고 대신 미소는 두 배로 날려요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설날 차례상 배달해 드립니다.’ 얼마 전 받은 전단 광고다. 폐백음식점이 차례 음식도 만든다고 한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음식량이 딱 상에 올릴 정도여서 그렇다는 대답이다.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려면 추가 비용이 꽤 든단다. 하지만 음식으로선 별 인기가 없어 그런 집은 많지 않다는 귀띔이다.

 

대신 명절이면 온 식구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몰려가 외식을 즐기는 걸 ‘가문의 전통’으로 삼는 집안이 많다고 한다.

명절 하면 노장층은 동그랑땡·전·산적을 기억하지만 청년층은 피자·파스타·스테이크를 떠올릴 것 같다.

물론 차례상에 올리는 나물류로 만든 헛제삿밥이란 관광 음식도 있지만 젊은 입맛까지 사로잡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배달해 주는 차례 음식의 원산지를 물었더니 그런 것 따지려면 더 비싼 집을 알아보란다.

하긴 가격 문제로 차례상이 수입농수산물 전시장이 된 지도 이미 오래니까.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에 조상님 받으시는 차례상이

오염될까 봐 근해에서 잡은 어패류 대신 캐나다산 바닷가재에 태국산 새우를 올려놓는 집은 없으려나.

그러고 보니 명절 풍속 중에 조용히 사라진 게 한둘이 아니다. 20년쯤 전까지는 차례를 지내고 나면 반합에 차례 음식을

종류별로 조금씩 담아 이웃집에 보내 나눠먹곤 했다. 우리 집안은 차례상에 절대 닭을 올리지 않았지만 이웃집에선

늘 닭다리를 보내와 은근히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그 집안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보내는 새우전을 고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문 꼭꼭 걸어놓고 사는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되면서 유네스코 등재감인 이 공동체 풍습은 조용히 ‘단종’됐다.

목욕탕에서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등을 밀어주던 미풍양속처럼 말이다. 설이 다가오면 옷은 물론 신발까지 새로 사는

설빔 풍습도 ‘멸종위기’다. 어린 시절 가슴 설레며 설빔을 기다렸던 기억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풍습이 또 있을까 싶다. 요즘 아이들은 나중에 무엇으로 명절을 추억할까?

대신 요즘 명절 신 3금이란 게 생겼다고 한다. 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진학·취직·결혼 이야기를 일절 입에 올리지 않는

에티켓이다. “참, 지난해 재수한다더니 어디로 갔지?” "오랜만이야. 요즘 어디 다녀?” “다 컸구나. 사귀는 사람은 있어?”

등등 무심코 꺼낸 인사말이 상대에겐 ‘상처 후비기’가 될 수 있어서다. 식구들이야 이미 오래전부터 삼갔겠지만 문제는

명절에나 만나는 눈치 없는 친척이다. 그중에서도 가깝다면 가깝겠지만 자주 보기는 어려운 고모부 정도가 가장 문제가 아닐까?

제발 그런 신세가 되지 않도록 이번 설날에는 말은 반으로 줄이는 대신 미소를 두 배로 늘려야 하겠다.

채인택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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