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皇의 '눈 마주치고 손 맞잡기'
"당신네는 비좁은 방 대여섯 개에 스물여섯 명이나 사는데, 셋밖에 안 되는 우리는 60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 이 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게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내 집에 와서 살고, 나는 당신 집에 가서 살기로 합시다."
빅토르 위고의 장편 '레 미제라블'에 등장하는 미리엘 주교의 말이다.
그는 주교가 된 사흘 후 주교관(館)과 인접한 자선 병원을 찾아 비참한 현실을 보고는 집을 맞바꿔버린다.
지난해 3월 이와 비슷한 장면이 바티칸에서 벌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후 "300명이 살아도 되겠다"며 교황 관저에 입주하지 않고 사제들의 공동 숙소에서 생활하기로 했던 것이다.
미리엘 주교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통점은 또 있다.
'눈 마주치고 손 맞잡기'이다. 미리엘 주교는 출옥한 장발장이 하룻밤 잠자리를 청했을 때 손을 맞잡고 "당신이 이름을 말하기 전에 당신에게는
내가 알던 이름 하나가 있소. 당신 이름은 형제요"라고 말한다. 상처 입은 야수 같던 장발장을 사랑의 성자(聖者)로 변화시킨 출발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추기경 시절 같은 이야기를 했다. "고해성사 때 저는 신자들에게 물어봅니다.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줄 때 눈을 마주쳤습니까? 그들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아본 적은 있나요?"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맞잡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司牧) 인생과 리더십의 기본을 보여준다.
가난한 이를 가난 속에 머물지 않고 사회 속으로 걸어나오게 하는 첫걸음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넨 따뜻한 눈길과 손길이라는 말이다.
교회가 외면하던 미혼모 자녀에게 세례를 주고, 머리가 혹으로 뒤덮인 사람을 포옹하고, 무슬림 소년·소녀의 발을 씻기며 교황은 늘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았다. 베일에 가려졌던 바티칸은행을 개혁하고, 마피아와 전쟁을 선포할 수 있도록 만든 '소프트 파워'의 원동력이다.
취임 초기 여성 사제 임명, 낙태, 동성 결혼 등의 문제에 대한 그의 보수적 입장에 대한 한때의 비판은 쏙 들어갔다.
최근 국내 천주교계엔 지난해 11월 교황이 발표한 권고 '복음의 기쁨'이 관심이다.
소탈·파격의 교황이 자신의 사목 방향을 체계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종교를 개인의 내밀한 영역으로 가두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누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콜카타의 데레사 복자(福者)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도록 이를 성당 안에
가두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교황의 말은 정치·사회문제를 들고 성당 밖으로 나서려는 이들에겐 '기쁨의 복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이다. 교황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태도로 사랑과 온유함을 강조한다.
교황은 또 이런 기도를 권한다. "주님, 저는 이 사람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 기도하며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맞잡는 모습. 교황의 방한을 앞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다.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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