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十常侍)
1800년 전 중국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 맹타라는 인물이 있었다. 돈은 많았는데 벼슬이 없었다. 그는 황제 측근인 환관(宦官) 장양의 노비들을
오랫동안 뇌물로 구워삶았다. "내가 지나갈 때 머리만 숙여 주시오." 장양의 집 앞은 늘 면회객들이 타고 온 몇백 대의 수레로 북적였다.
어느 날 맹타가 나타나자 노비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머리 숙였다. 그러곤 다른 사람 제치고 맨 먼저 주인을 만나게 했다. 면회객들은 맹타가 장양과
엄청 친한 사이인 줄 알았다. 앞다퉈 맹타에게 각종 진기한 물건을 갖다 바쳤다. 맹타는 이것들을 고스란히 장양에게 상납했고, 얼마 안 가 양주
장관이 됐다.
▶영제는 열두 살에 즉위했다. 어린 나이에 외척들 때문에 기를 못 펴던 그는 환관들에 의지해 컸다. 그는 장양을 '아버지', 다른 환관인 조충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환관들은 황제의 칙명까지 제멋대로 했다. 어느 날 영제가 궁중 망루에 올라가려 하자 환관들이 결사적으로 막았다.
"천자는 높은 곳에 올라가시는 게 아닙니다." 온갖 사치를 다한 자기들 호화 저택을 황제가 볼까 해서였다. 영제 시절 황제의 신임을 믿고 어두운
권력을 휘두른 열 명의 환관들을 십상시(十常侍)라고 한다.
1000여 명의 환관을 없앴다. 동탁이 또다시 어린 황제를 내세워 나라를 좌지우지하자 중국은 거대한 내전에 빠져들었다.
'삼국지'는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아니라 십상시의 방자한 권력 행사에서 시작된 것이다.
▶중국 왕조 정치에서 권력 암투, 간신을 상징했던 '십상시'란 말이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 떠돌고 있다.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몇몇
실세 비서관이 현 정권의 비선(秘線)이란 설(說)이 나도는 사람과 여러 차례 만났다는 동향 보고서를 현직 청와대 행정관이 올리면서 '십상시
모임'이란 말을 썼다.
▶'농단(壟斷)'이란 말이 있다. 원래는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이다. 옛날 중국의 시장은 물물교환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시장을
한눈에 보는 높은 언덕에 올라 장사를 하면서 이익을 독점했다. 십상시가 한 것이 권력을 농단한 것이었다. 보고서에 대해 해당 비서관들이나
청와대는 펄쩍 뛰고 있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철저히 조사해 가려야 할 것이다. 그전에 국민은 청와대 속사정이 어떻길래 환관들에게나 쓰던
'십상시'란 말이 공식 보고서에 올라가게 됐는지 궁금하다.
조선일보 김태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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