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 대금연주, 박용호/ 김수철 작
일본에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수철(金秀哲)이 있다.
김수철 하면 작은 거인, 일곱색깔 무지개, 못다핀 꽃 한송이, 나도야 간다, 정신차려
이 친구야, 날아라 슈퍼보드가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이건 김수철씨의 극히 단적인 모습을 본 것에 불과하다.
그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는 우리시대의 가장 영향력있는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말
그대로 작은 거인이다. 텔레비젼에서 라디오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그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말라. 이제 TV나 라디오는 그의 음악을 담아내는 매개체로 적당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대중매체에서 들려주었던 곡들은 모두는 아니지만 작곡한 지 5년 이상
묵은 곡이 많았다. 그만큼 그는 시대를 앞서 가고 있었던 것이고 시류에 편승한 음악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의 전성기를 가늠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런 논의가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은 고래사냥 영화 음악을 통해서였다. 국악의 굿거리 장단을 락적인 요소로 녹여내서는 신명나는 국악 록(?)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타악기 세션에 국악기가 동원되는 다시 말해 양약을 기본으로 국악적 요소를 묻힌
노래였지만 국악과 양악을 무척 자연스럽게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큰 수확이었다.
그의 히트곡 중에 '별리'는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의 국악적 작업이 작은 결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는 영화음악에서 무용음악으로 범위를 넓혀 '0의 세계', '불림소리' 무용음악으로 백상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TV드라마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미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서의 비중은 크게 줄어든 상태였지만 여전히 그는 사람들에게 가수로 각인되어 있었다.
1988년에는 그 해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을 서울 올림픽 전야제 음악을 발매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전야제 음악은 그야말로
국악과 양악의 동등한 만남이 이루어진 수작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올림픽이란 국가적 차원의 행사의 일부를 담당하는 전야제 음악을 담당한 터에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 대규모로 동원되어 풍성한 음악의 전개가 가능했다.
그는 여기서 국악에 기반한 멋들어진 말 그대로의 퓨전 음악을 선보였다.
<해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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