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의 아버지
간호사가 기운이 없어보이고 수심에 가득찬 젊은 해병을 환자의 침대 곁으로 안내했다.
“당신 아들이 왔어요.” 그녀가 노인에게 말했다.
환자의 눈이 떠질 때까지 같은 말을 몇 번 반복하였다.
심장마비의 통증으로 인해 강한 진정제를 맞은 그는 산소 탱크 옆에 서 있는 제복을 입은 젊은이를 게슴츠레 바라보았다.
그는 노인의 손을 잡았다.
해병은 자기의 거칠어진 손으로 노인의 힘없는 손을 감싸고 사랑과 격려의 메시지로 꽉 쥐었다.
간호사는 의자를 가져와 해병이 침대 곁에 앉을 수 있게 해주었다.
밤새 젊은 해병은 불빛이 흐릿한 병동에서 앉아 노인의 손을 잡고 사랑의 말을 건넸다.
종종 간호사는 해병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에서 쉬라고 권했다.
그는 거절했다.
간호사가 병동에 올 때마다 그 해병은 그녀와 병원의 야간 소음 – 산소탱크의 펌프소리,
야간숙직 직원들의 인사를 나누는 웃음소리, 그리고 다른 환자들의 신음소리 등을 의식하지 못했다.
때때로 그녀는 그가 몇 마디의 다정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지만 죽음의 문턱을 드나드는 환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단지 밤새 자기 아들의 손을 꽉 잡고 있을 다름이었다.
동이 터 올 무렵 노인은 세상을 떠났다.
그 해병은 그가 잡고 있었던 지금은 생명이 없는 손을 놓고 간호사에게 노인의 죽음을 알리려 갔다.
그리고 간호사가 일을 처리하는 동안 그는 기다렸다.
드디어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위로의 말을 하기 시작했으나 그 해병은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 남자는 누구였습니까?” 그가 물었다.
간호사는 놀랐다.
“그분은 당신 아버지 아니였나요?” 그녀가 말했다.
“아니, 그분은 제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그 해병이 대답했다.
“저는 평생 그분을 뵌 적이 없어요.”
“그러면 왜 제가 당신을 그분께 데려갔을 때 미리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저는 무슨 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또한 그 분에게는 아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런데 그분의 아들은 여기에 없었구요.
제가 그분의 아들인지 아니라는 말을 하기에는 그분의 병세은 너무 심각했고
그분이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인식하게되자 도저히 그를 떠날수가 없었어요.”
<작자 미상>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준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줌으로써 우리는 받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그러한 기회를 불편해 하여 피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것은 상대방이 물질적인 도움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꾸 회피하다보면 물질적이 아닌 경우에도 피하게 되는 습관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무엇이던지 줄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물질이던 정신적인 것이던 간에 말입니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단 주려고 마음을 먹었을지라도 더욱 중요한 것은 주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도움을 주어야 하니 어떻게 보면 차라리 안 주면 이런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인데
사서 고생을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주님은 병자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주셨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주시는 마음속에 타인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도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무언가 도움이 되어 줄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너희에게 안겨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 주는 분량만큼 너희도 받을 것이다."
<루가 6,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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