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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클래식

R.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Op.30

by DAVID2 2025. 12. 4.

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짜리 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Richard Strauss: Also Sprach Zarathustra 전주

Karajan conducting Berlin Phillarmoniker,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작품번호 30》(독일어: Also sprach Zarathustra)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896년에 작곡한 교향시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지은 같은 이름의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류의 여명’ 부분에서

쓰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곡가의 지휘로 1896년 11월 27일에 처음 연주했다.

연주 시간은 보통 30분 정도이다.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op.64 (전곡)

I. Einleitung, oder Sonnenaufgang

II. Von den Hinterweltlern

III. Von der großen Sehnsucht

IV. Von den Freuden und Leidenschaften

V. Das Grablied

VI. Von der Wissenschaft

VII. Der Genesende

VIII. Das Tanzlied

IX. Das Nachtwandlerlied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condcted by Mariss Jansons

 

 

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2001년 영화 A Space Odyssey 삽입버전)

Strauss, Richard(1864.6.11~1949.9.8) 독일

  후기 낭만파 음악의 거장인 그는 근대 독일을 대표하는 최대의 작곡가이며 표제음악과

교향시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아버지는 뮌헨 궁정 가극장에서 혼을 부는

단원이었는데, 슈트라우스는 아버지에게서 최초의 음악 교육을 받았다.
4세 때부터 재능을 보인 그는 6세에 피아노곡과 가곡을 작곡하였다. 16세 때 교향곡

d단조 등 작곡에 진전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고전 음악을 숙독시켰는데, 점차 19세기말의 낭만파

작품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1882년 그는 뭔휀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 미학, 문화사 등을 공부하였다.

1883년 그는 베를린에서 그 당시 미술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1885년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이며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에게 인정을 받아 마이닝겐에서 뷜로의

보조 지휘자 겸 합창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브람스,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스트 등의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되었으며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였다.

 1886년 뮌헨 가극장의 제3악장이 되었고, 1889년 바이마르 궁정 지휘자가 되었으며, 1894년에는

다시금 뮌헨, 1898년에는 베를린, 1919년부터 5년 동안은 빈 국립 가극장의 지휘자로 활약하였다.

1923년에 남 아메리카로 가서 재차 미국을 방문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1932년 나치스 정책은 유대인을 배척하였으며 음악가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그는 처음에 나치스 정권에 협조하여 정부가 설치한 음악국의 총재로 있었는데, 얼마 후 유대인이었던

멘델스존의 작품 [한여름 밤의 꿈]을 말살하고 대신 새 제목으로 작곡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이를 거부하고 유대인 츠바이크의 대본에 희극 [침물의 여자]를 작곡하였다.

그로 인해 당국으로부터 미움을 사서 1935년에 총재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1945년에 독일이 패망하자 그는 나치스 협력자의 혐의로 비난을 받아 작품은 학계에서

매장되어 곤란한 때도 있었다.

그는 생활을 위해 80여 세에 런던, 빈 등지에서 지휘봉을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84세의

탄생일을 맞이하는 해에 그는 나치스 숙청 재판소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는 다시금 햇빛을 보게 되어 85세 생일 때는 그를 축하하는 음악회가 각지에서 개최되었고

작품도 연주되어 절찬을 받게 되었다. 그는 인간적으로 신경질이 있는 반면 완고한 사람이며 

정력적인 활동가였다. 그는 어느 파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고 시대에 따라 환영되는 것도 믿지 않았다.

그는 형식에 중점을 둔 고전주의적인 작곡가였고 젊었을 때는 주로 교향곡과 실내악을 작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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