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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문학·예술

장영희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by DAVID2 2013. 3. 2.

오랫만에 책 한권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한때는 엄청 다독하여 모 도서관이 다독상 후보로 나를 추천한 적이 있을 정도였지만 인터넷에 빠지기 시작하며 점점 책을 멀리하게 되어

그간 책을 별로 읽지 못했는데 금년에는 조금이라도 책을 가까히 하려고 마음 먹고 1월에 다시 읽은 '배려' 다음 내가 좋아하는 장영희 교수의

책을 선택하였다.

 

장영희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나하고는 인연이 많다.

고등학교 4년 후배이기도 한 그녀의 부친인 장왕록 교수는 나의 대학 은사이기도 하고 그녀의 오빠는 나의 대학 과선배이시기도 하다.

그녀의 뛰어난 글솜씨에 오래전부터 그녀를 좋아했기에 그녀의 책을 여러권 읽었었는데 어쩌다 오늘 포스팅 하는 제목의 책을

미처 접할 기회가 없어서 금년 첫 도서로 이 책을 선정하였다.

 

장영희 교수의 마지막 저서이기도 한 이 수필집은 그녀가 암투병하며 보냈던 생애 마지막 시기에 쓴 글을 모은 수필집이라 그런지

마지막을 조용히 대비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녀의 뛰어난 글 솜씨와 더불어 힘겨운 암투병을 옅볼수 있는 이 책은 그녀의 다른 저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교훈을 준다.

 

아래 그녀에 관한 조선일보 김태익 논설위원의 글과 함께 그녀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가지 소개하고 '좋은 글' 카테고리에

그녀의 또 다른 글을 소개한다.

 

장영희 (1952.9.14~2009.5.9)

 

소녀 같은 단발머리에 옅은 미소,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 때문에 사람들은 장영희 교수가 조용하고 나직하기만 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다른 모습도 기억한다. 빠른 서울 말씨로 단칼에 푹 찌르는 촌철살인. 어느 해 가수 조영남이 장 교수 생일잔치를

열어주자 "둘이 결혼하는 거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장 교수가 한 마디로 주변을 잠잠하게 했다. "난 처년데 아깝잖아!"

▶장영희 교수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앉지 못해 누워만 있던 소아마비 1등급 장애우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엄마 등에 업혀 학교에 갔고,

엄마는 그를 화장실에 데려가기 위해 두 시간에 한번씩 다시 학교에 갔다. 그 후에도 평생을 목발에 의지한 삶이었다.

그러나 장 교수는 '천형(天刑)'이란 말을 제일 싫어했다. 그를 버티게 한 건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읽은 헨리 제임스의 '미국인'이라는 책에는, 한 남자의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 라고."('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 교수가 생산하는 희망의 바이러스는 그의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역경에 부딪히고 삶에 지친 동시대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2004년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이 재발하자 그는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고 썼다.

일산 국립암센터의 환자들을 위한 서가에 장 교수가 쓴 책들이 그렇게 많이 비치돼 있고 손때가 묻어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장 교수의 글이 주는 치유의 힘을 '장영희 효과'라고 했다.

▶장영희 교수가 8년에 걸친 암 투병 끝에 9일 [2009.5.9] 천국으로 갔다. "남보다 느리게 걷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장 교수였으니, 짧은 생애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많이 보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겼다. 그는 조선일보에 연재한 '영미시 산책'에서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가 된다"고 했다. 힘들어도 다들 힘을 내 자기 안에 있는 용기와 인내, 열정의 깃발을 다시 흔들자는 얘기였다.

장영희 교수의 명복을 빈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민숙아.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데,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 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다더구나.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그래서 삶은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불운에 좌절하여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든 작든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은 돌을 몇 개 먼저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더 큰 네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 꼭 네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다고 한다. 

이지대의 나무들은 너무나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채 서 있단다. 

눈보라가 얼마나 심한지 이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그야말로 무릎 꿇고 사는 삶을 배워야 했던 것이지. 

그런데 민숙아,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온갖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나름대로 거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며 제각기의 삶을 연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민숙아. 너는 이제 곧 네 몫의 행복으로 더욱더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고……

이것이 아까 네 뒷모습에 대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민숙아 사랑한다.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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