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h Piaf(1915~1963)
La Vie En Rose (1946)
Hymne a L'Amour (1949)
Les Feuilles Mortes (Autumn Leaves, 1950)
영혼을 노래했던 프랑스의 국민 가수로 1933년 데뷔.
사랑의 화신으로 이브 몽땅, 조르주 무스타키가 그녀의 도움으로 가수로 성공할 수 있었음
작사.작곡도 했던 가수로 La Vie En Rose를 직접 작사하였으며 1950년 헤비급 권투선수이자 애인이었던
마르셀 세르당의 죽음을 애도하며 부른 '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는 그해 최고의 히트곡으로
기록되었으며 음악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국내 팬들에게 유명한 곡이다.
Milord
Padam Padam (1956)
Non je ne regrette rien (1960)
전후의 샹송계 최대의 여성가수로, 본명 Edith Giovanna Gassion으로 1915년 12월 15일 파리의 노동자 동네 베르빌의
가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하찮은 거 리의 예인이고, 어머니는 변두리의 가수인데, 자선병원으로 가는 도중 그녀를 낳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도망가 버려 그녀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세상물정을 알게 된 무렵부터 아버지와 함께 거리에
나가 구경꾼한테서 돈을 모으는 역을 하고, 15세 부터는 혼자 노래 불렀다. 마침 그것을 들은 [자니스]라는 꺄바 레의 지배인
루이 르프레가 그녀를 자기의 가게에서 노래하게 했는데, 반년후 르프레가 어떤 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혐의를 받은
삐아프는 실의의 밑바닥에 가라앉 는다. 얼마 후 레이몽 아소, 말그리트 모노등의 격려로 재기하였고, <나의 병사님>등을
부르고 성공을 거두었다. 1940년 쟝 꼭또가 그녀를 위해 쓴 [냉담한 미남]에 의해 여우로서도 눈을 떴다.
1944년 [물랭 루즈]에서 이 브 몽땅(Yves Montand)을 알고 그를 사랑하여 열심히 선 전했으며 46년에는 샹송의 벗을
세상에 내보냈다. 그 후 복싱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으나 49년에 그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다.
1950년 9월 20 일 삐아프는 그때까지 뤼시엔느 보와이어(Lucienne Boyer)의 남편이었던 가수 쟈끄 필스 (Jacques Pills)와
미국 뉴욕에서 결혼하였고, 그 4년후에 이혼하였다. 1962년 21세 연하인 떼오 사라포와 결혼, 그와 함께 올 렝삐아극장에서
노래하였다. 그리고 63년 10월 11일 소 화기 계통의 출혈이 원인으로 요양중이던 리비에라에서 파리의 자택으로 돌아간 뒤
세상을 떠났으며, 그 충격으로 꼭또도 뒤를 따랐다. 노래와 사랑에 산 위대한 여 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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