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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특별기획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34) / Jascha Heifetz

by DAVID2 2013. 6. 10.

 

Jascha Heifetz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 1901년 2월 2일 ~ 1987년 12월 10일)는 리투아니아

 태생의 유대계 바이올린 명인으로, 20세기의 저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의 한 사람으로,

전 시대를 통틀어 위대한 바이올린 주자로 손꼽힌다.

 

 

 
 
Bruch/ Violin Concerto No. 1 in G minor Op26
 

제1악장
제2악장

 제3악장

 

 

하이페츠는 당시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언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유대인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연도를 놓고 논란이 있는데, 혹자는 1,2년 더 일찍 잡아 1899년이나 1900년에

 하이페츠가 태어났다고 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그를 더욱 비범하게 보이게끔 아들의 나이를

 2년 더 어리다고 말했을 공산은 있다. 아버지 레우벤 하이페츠(Reuven Heifetz)는 그 곳의

 바이올린 교사로, 빌뉴스 극장 관현악단에서 극장이 문닫기 한 시즌 동안 악장을 맡고 있었다.

야샤는 3살때 바이올린을 처음으로 잡았으며, 아버지가 그의 첫 교사였다. 5살때 그는

 레오폴트 아우어(Leopold Auer)의 제저였던 일리야 D. 말킨에게서 배웠다. 야사 하이페츠는

신동으로 7살때 코브노(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에서 펠릭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연주하여 데뷔하였다. 1910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들어사 레오폴트 아우어

밑에서 수학하였다.

하이페츠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서 연주하였는데, 베를린의 한 가정집에서 여러 유명한 바이올린

주자와 더불어 프리츠 크라이슬러를 처음으로 만났다.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연주하며 12살의

하이페츠에 피아노로 반주했던 크라이슬러는 "우린 무릎으로 우리 악기를 부러뜨려야겠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이페츠는 10대 시절에 유럽 각지를 방문하였다. 1911년 4월, 하이페츠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야외 음악회에서 25,0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를 하였는데, 선풍적인

반응을 얻어 연주회가 끝나고는 경찰이 이 어린 연주자를 보호해줘야 할 지경이었다.

 1914년 하이페츠는 아르투로 니키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였다. 지휘자는 무척

 감명을 받아 그렇게 훌륭한 바이올린 주자의 음악은 들어보지 못했노라 말하기도 하였다.

1917년 10월 27일 하이페츠는 처음으로 미국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였으며, 이내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하이페츠는 음악인 단체 피 무 알파 신포니아(Phi Mu Alpha Sinfonia)의 명예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16살때 그는 그동안 이 단체에 입회한 회원 가운데 가장 어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이페츠는 미국에 남아 1925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Bach / Chaconne, From Partita No.2 In D Minor, BWV 1004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I악장 Allegro mode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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