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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Folk·Country

Conway Twitty의 히트곡 모음 (1)

by DAVID2 2013. 12. 5.

 

Loney Blue Boy

Slow Hand

Whole Lotta Shaking Going on

Conway Twitty & Loretta Lynn /Release Me

C'est Si Bon

Sing Me Back Home

Linda on My Mind

 

 

Its only Make Believe

 

Hello Darling

Tight Fitting Jeans

 

50년대에는 락큰롤 가수로 7~80년대와 그 이후에는 컨츄리 가수로, 나라 전체를 주름잡으며 40여 곡에 가까운 곡들을

No. 1의 자리에 올려놓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20세기 최고의 컨츄리 가수 중 한 사람 Conway Twitty. 깊고, 남부 특유의

공명감 있는 목소리로 내쉬빌에서 가장 부드러운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였을 뿐 아니라 무척이나 대담한 사람이기도 했다.

다른 어떤 가수들보다도 그는 컨츄리 뮤직, 특히 어덜트 부문을 대표할만하다 할 수 있는데, 여자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부를 수 없는 성적인 암 시들이 담긴 곡들을 섬세하고 감성적인 보컬로 부르고, 이는 적잖은 성공의 요인이 되고 있다.

1933년 1월 강 배의 선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미국의 전 대통령 Clint on의 출신지이기도 한 Arkansas의 Helena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컨츄리 뮤 직과 리듬 앤 블루수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배울 기회를 접한다(4살 때 이미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0살 되던 해에는 Phillips Country Ramblers라는 그룹에서 처음으로 음악 활동을 하기 시작, 지방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한다.

음악에 재능과 흥미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 원래 그의 꿈은 프로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한다. 실제로 그는 Philadelphia의 Phillies에서

입단 권유가 들어올 정도로 충분한 야구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군에 징집 한국 전쟁에 참전하게 된 까닭에 입단을 성사시키지는 못한다. ...

멀고 먼 동쪽에서의 군 복무 기간 동안 그는 Cimarrons라는 군대 내 컨츄리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과 떨어질 수 없는 생활을 영위한다.

1956년 고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Phillies는 여전히 팀에 입단할 것을 권유했으나 Elvis Presley의 'Mistery Train'을 들은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되어 음악의 길을 걷기로 결심, Elvis가 그랬던 것처럼 꿈에 그리던 Sun Record의 Sam Phillips와 계약을 하기에 이른다.

비록 Roy Orbison에 의해 마이너 히트를 거두는 "Rockhouse"라는 곡을 씀으로 해서 Sun Record에 공 헌을 하기는 해도 자신의 곡을

내지는 못한 그는 1956년 말 Sun을 떠나 락 커빌리 패키지 공연에 참가, 이 공연 기간 중 Arkansa와 Texas시(city)의 이름을 결합한

Conway Twitty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1957년 초 Mercury 레코드와 계약, "I Need Your Lovin'"이 팝 챠트 정상에

오르기는 하나 대개의 싱글들은 별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1958년 MGM 레코드사로 옮김. Jack Nance와 함께 쓴 곡 "It's only Make Believe"는 Elvis Presley의 백 그룹인 Jordanaire의

백 보컬에 힘입어 2주간 No. 1에 오르고 또한 골드 레코드가 된다. 1959년과 60년에 걸쳐 Twitty는 다수의 싱글들을 발표,

Top 10에 오른 "Danny Boy" 와 "Lonely Blue Boy"와 같은 곡이 게 중 가장 사랑 받았으며 B급 영화에도 출연을 한다.

그렇지만 락큰롤 스타로서의 Twitty의 명성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1961년이 시작될 무렵, 그의 싱글들은 Top 40 진입에 거듭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계속해서 순회 공연을 하지만 이미 그는 MGM의 눈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후 ABC-Paramount와 함께 하면서 그는 컨츄리 뮤직을 레퍼터리에 추가, 노래하기 시작하지만 아직까지는 팝 스타일의 곡들을 더

 우선시 한다. Ray Price가 Twitty의 "Walk Me to the Door"를 불러 컨츄리 챠트 Top 10에 올려놓자 Conway는 컨츄리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1965년 이전까지는 그다지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 주지 못한다. 그러다 1965년 말 경, Twitty는 내쉬빌 사운드의

초석을 다진 사람 가운데 하나인 프로듀서 Owen Bradley와 협력, Decaa와 계약을 체결 본격적인 컨츄리 가수의 길에 들어서게 된

그는 그 이듬해(1966년) 봄, 처음 낸 컨츄리 싱글 "Guess My Eyes Were Bigger than My Heart"로 18위까지 오른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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