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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좋은글

프란치스코 교황과 할머니

by DAVID2 2014. 2. 6.

 

 

 

프란치스코 교황과 할머니

 

지난달 하순부터 나는 평화방송 특강 준비차 프란치스코 교황을 열공 중이다.

해마다 테마 하나씩을 정해 연례 특강 시리즈를 진행해 왔는데 지난해 말 ‘교황 프란치스코’란 주제가 거부할 수

없는 기세로 밀고 들어왔다. 파격, 자유로운 언행, 천진스러운 미소, 거의 연일 들려오는 ‘한 방’ 메시지 등이

연구를 본령으로 하는 내게는 허투루 흘려버릴 수 없는 물음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교황 프란치스코는 누구인가?

 

이 물음을 붙잡고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대다가 설 연휴를 맞았다. 이즈음의 중심 키워드는 당연히 ‘가족’이다.

무의식에서도 프란치스코를 사유하고 있던 나는 불현듯 그의 가족사를 추적하다가 소중한 사실 하나를 포착하게 됐다.

바로 그의 그릇 형성에 끼친 할머니의 영향이다.

교황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할머니가 반복해 들려준 이야기들을 언급한다.

그 가운데 ‘시간’에 관해 각인시켜 준 그녀의 지혜는 가히 압권이다.

 “하느님이 너를 보고 있음을 알라. 지금도 너를 보고 있음을 알라. 언제일지 모르지만 너도 죽으리라는 것을 알라.”

할머니는 이 구절이 적힌 종이를 침대 옆 탁자 유리 밑에 깔아 놓고선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읽으셨단다.

교황은 할머니가 이탈리아의 어느 묘지에서 읽었다며 들려줬던 문장도 7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하며 상기한다.

“지나가는 이여, 잠시 멈춰 서서 너의 발걸음과 걷는 속도를, 너의 마지막 걸음을 생각해 보라.”

열 살이 채 안 된 손자는 이런 말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적어도 인생의 끝을 생각하며 긴 호흡으로 사는 법을 어느새 궁리하는 습관이 들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손자가 장차 큰 일을 하도록 ‘그릇’을 키워 줬다. 손자에게 특정한 꿈을 강요하지 않고 선택을

존중해 주고 격려해 줌으로써 스스로 책임지는 마음가짐을 형성하도록 해 줬던 것이다.

그가 스물두 살 되던 195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의 빌라 데보토 신학교에 들어가자 그녀는 이렇게 말해 줬다.

“잘했다. 하느님께서 너를 부르신다면 복 받은 것이지. 하지만 네가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집 문이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네 생각이 바뀐다 해도 아무도 너를 책망하지 않을 거야.”

항상 신중히 선택하되 외부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기. 이것이 큰 일을 할 사람의 덕목이 아닐까.

명절이면 식구들이 모두 모여 대가족을 이루는 것이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서양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런 기회에 기왕이면 저렇듯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자손들에게 거부감 없이 전수되는

아름다운 문화가 복구되기를 희망해 본다. 우리에게도 이미 있었다. 근래에 와서 잠시 단절됐을 뿐이다.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던 효는 노인세대를 봉양함으로써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노인세대의 귀한 가르침을 대물림함으로써 구현된다.

의무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외려 축복을 말하고자 함이다.

나는 세계의 지도자로서 교황의 그릇이 형성되는 데 가족들로부터 전수된 지혜가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

교황의 진솔한 증언에서 거듭 확인했다. 교황은 지난해 10월 26일 성베드로 대광장 강론에서 ‘꼰대’가 아닌

현자적 풍모로 젊은 세대에게 권했다.

“여러분은 어른들 말씀을 듣나요? 어른들의 기억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열고 있나요?

어른들은 가족의 지혜입니다. 우리들의 지혜죠.

어른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는 죽고 맙니다. 어른들에게 귀를 기울이세요.”
 

차동엽 신부 ip81335@hanmail.net | 중앙Sunday 제360호 | 20140202 입력 

 

Mozart / Ave Verum Corpus / Vienna Boys'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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