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희(오리지널 버젼)
한영애
장사익
조용필
최백호
대중음악 노랫말은 때로 시(詩)다. 가슴 깊숙이 들어와 가슴을 뭉텅 베어 가는 노래라면 그건 시다.
계간지 '시인세계'가 2004년 시인 100명에게 '좋아하고 흥얼거리는 노랫말'을 물었다.
2~5위에 '킬리만자로의 표범'(작사 양인자) '북한강에서'(정태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양희은)
'한계령'(하덕규)이 올랐다. 단연 1위는 1953년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손로원)였다. 열여섯 명이 꼽아
2위를 여섯 표 앞섰다.
▶작사가 손로원은 원래 화가였다. 젊어 홀로된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키운 외아들이었다.
그는 피란살이 하던 부산 용두산 판잣집에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을 걸어뒀다.
연분홍 치마에 흰 저고리 입고 수줍게 웃는 사진이었다.
사진은 판자촌에 불이 나면서 타버렸다.
하나 남은 어머니 흔적을 잃고 그가 썼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요즘 차에 두고 노상 듣는 노래가 '봄날은 간다'다. 백설희부터 박은경과 래퍼까지 60년에 걸친 가수 스물셋이 각기 불렀다.
최백호·장사익은 감정을 간수하지 않고 뜨겁게 내지른다. 절절하게 토해낸다. 조용필·김도향·최헌은 덤덤하도록 절제한다.
들을수록 깊은맛이 우러난다. 한영애는 신들린 듯 주절대는 스캣이 오래 남는다.
나훈아·이동원·심수봉도 저마다 저답게 불렀다.
▶듣다 보니 봄날이 다 갔다. 거리엔 어느새 반팔 차림이다. 좋은 시절은 금세 간다.
봄도 문득 왔다 속절없이 떠난다. 그래서 화사할수록 심란하다.
'봄날은 간다'는 그립고 슬프다. '그때가 봄날이었지' 되뇐다. 다시 못 올 젊음의 회한(悔恨)을 삼킨다.
나이 든 이는 이제 봄을 몇 번이나 더 맞겠는가 싶다. 그 애틋함에 끌려 수없이 많은 가수가 불렀다.
가는 봄 서러워 목이 멘다.
▶'봄날은 간다'를 듣다 듣다 별스러운 곳에서 듣는다. 며칠 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희 의원이
첫 소절을 불렀다. 막말 소동으로 회의장에 흐르던 침묵을 깨뜨렸다. 야당 앞날을 탄식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어버이날 경로당에서 불러 드리고 왔다"고 했다.
노인 위로에 적절한 노래도 아니다. 그는 이튿날 "분위기 바꿔보려다 심려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공적연금에 대한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으로 얄궂은 노래가 됐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참 궁색하게 들린다. 정치인은 좋은 노래마저 지저분한 정치로 오염시킨다.
출처: [만물상] '봄날은 간다' 조선일보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음악 > 가요·가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은숙 / 춤을 추어요 (0) | 2021.09.26 |
---|---|
최혜영 / 그것은 인생 (1983) (0) | 2021.08.30 |
홍진영 / 산다는 것 외 (0) | 2015.01.22 |
김도향 / 바보처럼 살았군요 (0) | 2015.01.11 |
이영화 / 힛트곡 모창 메들리 (0) | 2015.0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