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飮食)으로 본 광복 70년 [조선일보]
일본식
단팥빵, 실향민의 냉면, 그리고 라면의 추억해방 이후 격동의 시간을 지나면서 70년간 한국인들은 어떤 음식을 가장 많이 즐겨 먹었을까.
굴곡 많았던 현대사만큼이나 우리의 음식에도 다양하고 재밌는 사연들이 많이 얽혀있다.
편집 및 구성= 뉴스큐레이션팀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잠시,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5년 뒤 터진 6·25전쟁은 기근을 더욱 심화시켰다.
1956년 들어오기 시작한 美잉여농산물 원조와 70년대 산업화를 겪으면서 우리의 식생활은 형식이나 내용에서 큰 변화를 맞는다.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의 80년대와 문민정부를 맞이한 90년대를 지나면서 식탁 위 음식은 '생존'의 문제가 아닌 '선택'과
'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겪어 온 지난 70년간의 식문화를 각 시대 대표 메뉴별로 정리했다.
일제는 우리의 식탁의 모습을 36년간 많이 바꿔놓았다. 현재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는 간식들도 식민지 시기에 들어와 변형된 것들이 많다.
겨울이 되면 꼭 사먹는 붕어빵과 국화빵, 2014년 크게 유행한 단팥빵과 팥빙수 역시 원래 일본의 음식이다. 최근 고급화 전략으로 곳곳에
매장이 생기고 있는 단팥빵은 1874년 기무라 야스베에라는 사람이 처음 선보인 빵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가운데가 움푹하게 들어간
단팥빵의 배꼽은 단팥빵을 즐겨먹던 메이지 일왕과 관련이 깊다.
흔히 '오뎅'으로 알고 있는 '어묵'은 본래 일본에서 '가마보꼬'라고 불리는 음식이었다. 어묵의 일본식 표현으로 쓰이는 '오뎅'은 어묵이 아닌
국물요리를 뜻한다. 생활 속 일본어 잔재인 가마보코를 몰아내고자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전혀 다른 일본어인 오뎅이 정착한 셈이다.
국민 간편식으로 수십년간 사랑 받아온 김밥도 일제의 노리마키와 후토마키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두꺼운 김에 싸서 먹는 노리마키와 후토마키는 1924년 출간된 요리책 '조선무쌍 신식 요리 제법'에 요리 방법이 나와 있는데, 후에 우리에게
소풍이나, 도시락으로 싸먹는 한국식 김밥으로 변형되었다.
하지만 이런 음식들은 당시 일제의 수탈과 횡포에서 갓 벗어난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고, 상류층에서만 가끔 간식으로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이런 음식들이 대중들에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전쟁을 지나 美 원조로 밀가루 공급이 활성화 된 이후인 70년대 부터이다.
해방 직후 일본 것은 죄다 버리고 몰아내자고 얘기했지만 이미 바뀌어버린 입맛만큼은 몰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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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가장 주목할만한 것이 일제가 남긴 요리옥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옥은 수랏간 내인으로 있었던 안순환이 차린 명월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앞서 생긴 곳은 혜천관이다. 이 곳에서 총독부 고관과 친일파들의 밀실 정치와 함께 각종 유흥이 이뤄졌고, 당대의 모던보이와
기생들의 사랑놀음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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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놀이와 정치가 빠진 요리옥에서는 푸짐한 한상차림를 한정식이라는 메뉴로 탈바꿈시켜 손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50년대 전쟁과 고향의 맛
미군의 잔반과 여러 남은 음식들을 한데 섞은 뒤 물과 소다를 넣어 끓인 것으로 지금으로서는 '음식'이라고 부르기엔 힘든 음식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UN탕'이라고 불리기도 하면서 배고픈 피난민들에겐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우리가 지금 흔히 먹는 돼지국밥과 부대찌개의
기원이라고 하는 설도 있을만큼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우리 현대사와 음식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6·25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많은 실향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왔고, 그 과정에서 여러 지역의 음식들이 한데 섞이고 퍼져나갔다.
이북의 실향민들의 음식 중 가장 많은 사랑받는 것이 여름철 대표 별미 냉면이다. 본래 이북에서는 겨울에 먹었으나 일제 때 제빙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름에 더 많이 먹는 음식이 되었다. 식당마다 냉면을 만드는 방법이나 맛 또한 각양각색으로 변했지만 우리가 최고로 치는
냉면은 역시 이북식으로 만들어 내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다. 6·25 이후 이북 사람들이 북한식 냉면을 파는 집들이 서울에 늘어났고,
대표적인 여름 별미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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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함경도 실향민이 꼽은 최고의 냉면집
전쟁 때 구하기 힘들었던 메밀을 대신해 밀로 말아 먹었던 부산의 밀면은 전쟁이 남긴 냉면의 동생 같은 음식이다.
한때 '짝퉁 냉면'이라는 인식도 있었지만 최근엔 냉면보다 더 많이 찾는 부산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맛은 냉면과 비슷하지만 가격은 냉면보다 싸 부산에 모인 6·25 피란민들이 고향의 맛을 채우고 허기를 달래기에 제격이었다.
60년대 밀가루에 길들여지는 입맛
1954년 미국은 자국의 농산물의 가격을 안정시키고, 후진국을 원조할 목적으로 공법 480조을 제정했다. 1956년부터 한국에 들어온
이 원조의 구체적인 내용물은 밀과 보리 등 대부분 곡물이었으며, 이 때부터 우리 식탁에 밀가루가 본격 올라오기 시작한다.
밀가루 유행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실시한 혼분식 장려운동을 통해 더욱 확산되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밀가루 음식을 장려하고,
밥에 잡곡을 섞어먹는 것을 권하면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쌀의 소비를 억제하고자 했다. 이로인해 한국인의 입맛과 외식 문화, 식탁 풍경
등은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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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에 잡곡 안 섞으면 야단맞던 시절"
당시 혼분식 장려 정책에 힘입어 많은 라면과 빵 공장이 생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공장은 1963년 삼양라면을 만든 삼양공업주식회사이다.
1950년대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식품업에 뜻을 품은 삼양식품의 창업주 故전중윤 명예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보았던 인스턴트 라면을 우리나라에 들여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정부를 설득해 라면 공장 설비를 위한 지원을 받았으며,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우리 입맛에 맞게 라면의 맛을 맵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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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식량' 절실했던 60年代… 삼양라면 창업
당시 처음 출시된 라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값싼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라
최고의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손님 접대용의 귀한 음식이었다.
일반 서민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 처음엔 판매부진을 겪었다. 라면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혼분식 장려 정책
때문이었다. 정부는 서울 종합분식센터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라면과 빵 소비를 이끌었고, 군인들에게도 1주일에 한번씩 라면 배식을 했다.
국민의 입맛을 라면에 익숙해지게 길들인 덕분에 많은 라면회사들이 생겨났고, 라면은 한국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식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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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특수 營養 강화 국수'… "손님·선물용으로 최고!"
70년대 밥상의 기적 통일벼
5·60년대 오랜 식민지와 전쟁으로 인해 절정에 달했던 굶주림은 71년 통일벼의 등장으로 막을 내린다. 일본 산 유라카와 대만 산 TN1를
교배한 볍씨를 다시 열대지방의 IR8 볍씨와 교배한 통일벼는 키가 작아 잘 쓰러지지 않았고, 쌀알의 갯수가 120알에서 130알로 보통의
벼보다 30알에서 40알 정도 많아 식량 증식에 적합했다. 통일벼 생산은 70년대 꾸준히 증가해 74년엔 생산량이 3000만석을 돌파하고 77년에
쌀 자급을 이룰 수 있었다. 통일벼의 탄생은 한반도의 기나긴 굶주림을 끊어낸 녹색혁명이었다. 그러나 통일벼는 쌀의 밥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후에 점점 보급이 중단이 되고 1980년대 '일품벼'와 같은 품종에 자리를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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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원없이 먹는게 소원"… 굶주린 대한민국 구한 '통일벼'
6·70년대 대형 식품회사의
등장
62년
식품위생법이 실시되고, 7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식품 공장들이 생겼다. 이 때 지어진 공장들은 제당업을 시작으로 점점 생산 제품들을
늘려갔는데, 빵·라면과 같은 식품도 있었지만 주로 과거에는 집에서 만들어 먹었던 간장이나 조미료, 주류 등을 취급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정부가 요구하는 식품 위생을 준수하면서 내놓는 공장제 식품들은 국민들의 입맛을 바꿔 놓으며 일부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집에서 담가먹었던 조선간장 대신 단맛이 강한 양조간장이 각종 요리에 양념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60년대 등장한 화학조미료 미풍과 미원은
음식을 만들 때 없어서는 안될 주부들 사이에서 필수품이 되었다. 그만큼 식품회사들 간의 판촉 경쟁도 심했고, 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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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반지까지 걸었던 조미료 회사들의 경품전쟁
80년대 치맥의
탄생.
77년에 이룬 쌀 자급으로 배고픔에서 벗어나면서 80년대엔 보다 영양가가 높고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되었다. 음식의 양보다는 질을 얘기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 때 국민들이 가장 구하기 접하기 쉬운 보양식은 '닭'이었다. 조선시대까지만해도 귀한 음식이었던 닭이 60년대 후반
양계업이 활성화로 구하기 쉬운 재료가 되었다.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대외적 이미지가 중요했던 정부는 보양식
문화를 보신탕보다는 삼계탕으로 유도했고, 이는 삼계탕이 국민 보양식이 되는데 일조했다. 양계업의 발전은 1980년대 맥주의 확산과 함께
치킨 집의 활성화를 가져오는데, 아파트 주변에 수많은 치킨 배달집이 생기면서 치킨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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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에 10Kg씩 먹어… 한국인에게 닭이란?
OB맥주가 OB베어라는 호프집을 체인모집해 크게 인기를 끌자 경쟁사인 크라운맥주에서도 크라운비어를 만들어 손님을 모았다. 대학가와
직장인들 사이에서 소주보다 맥주와 양주 소비가 늘었고 막걸리집들이 호프집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며 생맥주를 함께 파는 프랜차이즈 치킨점이
등장했다. 맥주의 소비는 80년대 꾸준히 상승해 88년엔 탁주를 제치고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리는 술 1위를 차지했다. 고급술로 인식되던
맥주가 많이 팔리자 맥주에 매겨지는 세금과 가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90년대
패스트푸드와 패밀리레스토랑의 등장
활성화되었다. 대부분의 음식업이 프랜차이즈로 변화하면서 어떤 곳에 가도 비슷한 맛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80년대 후반, 올림픽을
치르고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우리 식탁에도 세계화 국제화가 불었는데 가장 빠르게 유행한 것이 패스트푸드이다. 1984년 KFC를 시작으로
1988년에는 맥도날드가 들어왔으며 1991년 TGI 프라이데이가 한국 최초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문을 열었다. 이런 서구화되는 식문화에 반해
반대로 전통을 강조하거나, 한국 브랜드나 한국 음식점을 이용하자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2000년대 웰빙과 퓨전 그리고 커피의
시대
2000년대 이르러 우리의 식문화는 점점 고급화되고 세분화되었다. 음식 선택과 식사에 건강, 환경, 종교 등 다양한 취향과 기준이 생겨났다.
채식과 식재료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국민 소득이 2만불로 높아지면서 유기농 건강식에 대한 관심 커졌다. 이런 사람들의 취향을
외식업과 식품산업은 영리하게 파악해 다양한 제품들과 음식점들을 내놓았고, 2000년부터 2010년까지 패션의 유행만큼이나 사람들의 입맛 또한
매우 빠르게 변했다. 또한 한국의 음식에 다른 나라의 음식을 접목시킨 퓨전요리도 유행했다. 한국의 음식이 세계에 알려지고, 생소한 해외의
음식들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레 여러 식재료와 조리방법을 사용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파는 술집과 음식점이 늘어났다.
한편 2000년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국민들이 밥보다는 커피를 훨씬
많이 섭취한다는 점이다. 2013년 질병관리본부의 ‘2013년 국민건강영양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당 커피 섭취 횟수는 12.3회로 주당 7회 섭취하는 쌀밥보다 대략 5회 정도 더 많다. 80년대 붐이 일었던 호프집은
카페들로 모두 바뀌었고, 거리엔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들고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커피 문화는 6·70년대 다방 문화나, 믹스·자판기
커피에서 벗어나 에스프레소 커피로 바뀌었다. 쌀밥을 배불리 먹기만 해도 소원이던 시절에서 밥보다는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시대까지 7
0년간 우리의 식탁 위 이야기는 세월만큼이나 역동적으로 변화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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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커피 테이크아웃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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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빠른 속도로 변하는 입맛
참고문헌 : 식탁 위의 한국사 / 주영하 지음
'기타 >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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