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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잡동사니

어제 오지 그랬슈

by DAVID2 2016. 7. 5.

어제 오지 그랬슈

되게 바쁜 표정의 남자가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 서서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펴고 서 있었다.
한 층에 엘리베이터가 닿을라치면 '열림' 버튼을 마구 눌러댔고,
사람이 내리고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또 열 번쯤 눌렀다.
닫힘 버튼이야 문을 빨리 닫게 하는 기능이 있지만 열림 버튼은 닫히던 문을
다시 열리게 하는 기능밖에 없기에 그 남자 행동이 무모하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열림 버튼을 백번 눌러봐야 엘리베이터는 서야 하는 층에 닿아
센서를 감지하기 전에는 열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떤 여자가 이미 눌러져 있는 '올라감' 버튼을 계속 눌렀다.
그런다고 야속한 엘리베이터가 빨리 내려올 리 없었다.
여자는 얼마나 바쁘고 급한지 갑자기 '내려감'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1층에 닿은 엘리베이터에서 모든 사람이 내렸다.
그 여자는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탔고, 지하에서 버튼을 누른 사람과 함께 1층으로 올라왔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해하려고 해봤으나 이해할 수 없었다.

빨간 신호를 받아 도로에 정차하고 있을 때, 어떤 차는 꼭 슬금슬금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다고 신호등이 빨리 바뀔 리 만무하다. 그런 차들은 정작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었을 때 출발이 늦다. 그럼 도대체 왜 슬금슬금 앞으로 나아갔을까.
내 운전 인생에 100% 정지라는 건 없으니 시속 1㎝로라도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커피 자판기에서 어떤 사내가 커피를 여러 잔 뽑고 있었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른 직후 커피 꺼내는 곳의 플라스틱 커버를 열고 종이컵을 붙잡고 있다 .
기네스북 커피 뽑기 부문에라도 도전하는 모양이지만, 프로그래밍된 대로
커피와 설탕과 물을 붓는 자판기가 그런 심정을 알고 커피를 빨리 내줄 리 없다.

정말 한국인 DNA에 유독 '빨리빨리'가 넘치는 것일까.
충청도 농담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은 듯한데 말이다.
충청도 택시기사가 빨리 가달라고 재촉하는 승객에게 말했다.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조선일보 한현우·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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