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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잡동사니

한국 대표 작가들이 말했다, 여긴 꼭 가보라고 (섬진강 매화)

by DAVID2 2017. 4. 9.

나 없거든 섬진강 봄물 따라 매화 보러 간 줄 알아라

                         



남 하동에서 섬진강 따라 쌍계사 가는 길. 3월 13일 푸른 차밭 이랑 사이로 청매화 한 그루가 꽃을 피웠다.

봄날의 섬진강은 구례·곡성부터 하동·광양까지 꽃천지를 이룬다. 임현동 기자


 
한국의 대표 작가 10명이 추천하는 '봄에 가고 싶은 국내 여행지' 세 번째 순서는 시인 김용택(69)의 섬진강입니다.
섬진강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1982년 창비에 통해 ‘섬진강 시인’으로 이름을 올립니다. 당시 발표한 ‘섬진강’
연작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 가며 보라 /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굳이 시인이 노래하지 않더라도 섬진강은 늘 봄에 가고 싶은 여행지 첫손에 꼽힙니다. 여기에 추천사까지 더해지니
벌써 엉덩이가 들썩들썩, 안 가고는 못 배길 곳이 됐습니다.
 전남 구례·곡성에서 경남 하동·광양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벚꽃은 예년보다 빠른 3월 말에 만개할 예정입니다. 

[작가여행지 ③ 김용택의 섬진강] 이 봄, 섬진강에 꼭 가야 하는 이유

정리=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소쩍새가 처음 울던 날 밤이면, 어머니는 “애들아 내일 아침에 변소에서 쪼그리고 앉아 어젯밤에 소쩍새가 처음
울었지, 하고 기억해낸 사람은 영리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화장실에서
소쩍새의 첫울음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늘 화장실 문을 나서며 ‘아차! 어젯밤에 소쩍새가 처음 울었지’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소쩍새가 울면 땅속에 있는 뱀이 눈을 뜬다고 했다.
 
봄은 그렇게 온다. 응달지던 뒤란에 햇볕이 들이치고 잔설이 녹아 앞 강 강가에 버들가지가 피어나면 깊은 물 바위
속에서 겨울을 지내던 물고기들이 풀려나왔다. 어디선가 개구리들이 울고, 산은 어제 보았던 그 산이 아니다.
그러다가 보면 어느새 봄은 성큼 다가와 텃밭 양지쪽에 작은 풀꽃이 피어난다.  
 
봄날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 꽃 보러 간 줄 알아라

 전남 구례군 반곡마을에 만개한 산수유 나무. 임현동 기자

전남 구례군 반곡마을에 만개한 산수유 나무. 임현동 기자



[출처: 중앙일보] 나 없거든 섬진강 봄물 따라 매화 보러 간 줄 알아라

섬진강은 허리띠를 벗어 아무렇게나 휙 던져 놓은 것처럼 굽이굽이 작은 마을과 작은 들을 지나 수줍게 골짜기들을 돌아간다.
보이는가 싶으면 어딘가로 굽이돌아 숨고 숨은 굽이를 찾아 따라가다 보면 어디선가는 유유하고 자적하다가 때로 부서져 청산을
외쳐 부른다. 그렇게 섬진강 봄물을 따라가다 구례산동으로 숨어 들어가 보라. 소쿠리 속 같은 골짜기에 노란 물감을 수백동이
엎질러 놓은 것 같은 노란 산수유 골짜기를 만난다. 이골 저 골에 노랗게 뒤덮인 산수유꽃 빛이 온몸을 노랗게 물들인다.

 
섬진강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경남 하동군 화개면 미점리에서 만난 매화. 임현동 기자

경남 하동군 화개면 미점리에서 만난 매화. 임현동 기자


구례는 해와 달과 바람이 머문 고을이다. 바람과 물과 들과 산이 가득한,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고을이다.
구례부터 하동·광양까지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 강가에 꽃구름이 둥둥 뜬다.
섬진강 하동포구 칠십리 길은 꽃길이다. 구례 지나 하동·광양 가는 길 양쪽 골짜기 매화꽃을 보지 않고
어찌 꽃을 이야기하랴. 꽃잎이 흩날리면 강물은 꽃잎을 받아 싣고 흐른다. 구례·하동·광양까지 가는
길에서 그대들은 몸도 마음도 어디 둘 데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 끝에 서면 사람들은 말을 잃는다.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있고 골짜기가 있으면 물이 모이고 물이 모이면 넘쳐흐른다. 흐르지 않으면 어찌
강이 강이겠는가. 섬진강의 봄날은 그렇게 강이 다 꽃이고 봄이 다 꽃이고 내 몸도 마음도 꽃이 되어 흐른다.
 
방창 
산벚꽃 흐드러진
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
푸르름 다 가고 빈 삭정이 되면/하얀 눈 되어
그 산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그래도 우리들의 그 어떤 날 섬진강에 봄이 오고 꽃이 피니 그 얼마나 안심인가.
산은 서서, 강은 흐르며 우리더러 꽃이 되라하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섬진강 시인 김용택. [중앙포토]

섬진강 시인 김용택. [중앙포토]



김용택 시인
작가 약력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1982년 ‘섬진강’으로 등단.
시집 『섬진강』『맑은 날』『누이야 날이 저문다』『그리운 꽃편지』『강 같은 세월』『울고 들어온 너에게』등

[출처: 중앙일보] 나 없거든 섬진강 봄물 따라 매화 보러 간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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