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꾼 국수집
‘삼각지 국수집’을 촬영한 것이 방송된 직후였다.
마흔 정도 된 것 같은 남자가 전화로 담당 PD를 찾더니 갑자기 울먹이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쳐 댔다.
누구냐고 물으니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국수집 할머니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람입니다.”
“인생이 바뀌다니요?” 황당해서 물으니 이 남자가 사연을 털어놓았다.
15년 전, 이 남자는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리고 용산역 앞을 배회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는 서글픈 인생이었다.
하루는 배가 너무 고팠는데, 어쩌다 보니 골목에 있는 할머니네 국수집 앞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쭈뼛쭈뼛 들어서자마자 할머니는 그의 몰골을 보고도 환하게 웃으며 ‘어서 앉아요’ 하더란다.
그리고는 국수를 말아 주었다. 허겁지겁 국수를 배에 퍼 넣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그릇을 빼앗아 갔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국수를 한가득 더 담고 있었다.
두 그릇을 굶주린 배 속에 털어 넣은 뒤에야 이 남자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나 돈 없슈. 배 째슈” 할 생각이었는데, 할머니의 풍성한 마음과 웃음을 본 다음이라 그런 짓을 할 자신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가 국수 삶는 틈을 타서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할머니가 뒤통수에 대고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개의치 않고 국수 먹고 힘난 다리를 기운차게 놀리며 줄행랑을 쳤다.
한참 도망가서 숨을 돌리고서야, 귓전에 걸려 있던 할머니의 외침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냥 가도 되니깐 뛰지 마! 다쳐!”
그날 이 남자는 몇 시간이나 울고 또 울었다.
결국 다음날 집으로 들어가서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파라과이로 혈혈단신 이민을 떠났다.
죽을 힘을 다해 일했고 15년이 지난 지금 성공 시대를 이룩해 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그 할머니를 본 것이다.
국수 한 그릇이 그렇게 큰 영생의 음식이 될 수 있음을 깨우쳐 준 삼각지 국수집.
그곳은 그 어떤 미식의 향연장보다도 위대한, 내 인생 최고의 식당이었다.
-글쓴이 미상-
‘행복한 동행’2004년 8월호 중에서-
일 년에 한 번, 섣달 그믐날 저녁에 우동 한 그릇을 나누어 먹는 모자를 위해 특제 곱배기 우동을 준비하고 기다린다는
우동집 주인 이야기를 써서 몇 년 전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일본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을 연상하게 하는 마음 따뜻해지는 글이다.
이런 훈훈한 인정을 먹여주는 식당이라면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 보다도 음식맛이 훌륭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류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을 보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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