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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문학·예술

나태주 / 선물

by DAVID2 2021. 2. 28.

선물
<나태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며 쓴 시일까. 

얼핏 보면 어떤 여성에게 바친 사랑시 같지만, 이 시의 수신인은 남자다.  

나태주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회갑을 넘기고 62세 교직정년 나이쯤 해서 시 전집을 내고 싶었는데, 고요아침이란 출판사와 

얘기가 되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교정을 열 차례 이상 보았지만 그래도 오자가 계속 나오는 거예요. 

그 출판사의 김창일 편집장이 전집을 편집했지요. 여러 차례 이메일과 전화를 주고받다가 마음으로 

가까워졌고 그를 통해 여러 가지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들었을까. 그 편집장은 시를 읽다가 여러 번 컴퓨터 앞에 코를 박고 흐느껴 운 적이 있다고 했다. 

동병상련의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시인의 가슴 속에서 울컥, 문장이 떠올랐다. 

곧장 컴퓨터를 열어 그의 이메일 주소 아래 문장을 적어나갔다. 그 문장이 바로 이 시다. 

시인은 이 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선물은 공짜로 받는 물건이고 귀한 물건, 소중한 그 무엇입니다. 호되게 병을 앓거나 고난을 겪어본 

사람은 압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루하루 우리가 받는 지상의 날들이 선물입니다. 

생명이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내 앞에 있는 당신, 

가끔 말을 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투정도 부리는 당신이 나에게 그럴 수 없이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진작 이것을 깨달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과 콧노래 

한 구절이 나에게 ‘한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 된다고 그랬습니다.”  

시인은 또 “그것은 슈퍼마켓이나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 아니며 벽장이나 다락 속에 

깊숙이 넣어둔 보물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나에게 이미 있는 것들인데, 그걸 아낄 이유가 없으니 

망설이지 말고 서로가 주고받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시인이 평소에 하는 말 중에도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들은 기쁨이 부족해서 우울증에 걸리고 불행을 

맛봅니다. 서로에게 선물이 될 때 하루하루 아름다운 세상이 열리고 천국에서 사는 날들이 약속될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사람은 살아서 이미 천국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 출처: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나태주

입력2021.02.26 05:00 수정2021.02.26 05:00/한국경제신문>

 

 

나태주: 1945년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대숲 아래서』, 『마음이 살짝 기운다』 등 40여 권.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New Christy Minstrels / Today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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