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drich Smetana / Vltava (Die Moldau) 스메타나 <나의 조국>중에서 몰다우강 스메타나가 '나의 조국'의 작곡을 시작한 것은 50세 무렵인 1874년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귀에 이상이 생겨 제1곡인 비셰흐라트(높은 성)에 이어 제2곡인 몰다우 작곡에 착수했을 무렵에는교향곡 9번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처럼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양 기슭에서 뿔피리 소리와 시골 춤, 달빛과 요정의 음악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성 요하네에 이르러 파도가 물보라를 튕기며 흩어지는 모습을 묘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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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Vlast Moldau(2) 가장 유명한 작곡가 중의 하나이다. 대표작으로 교향시인 《나의 조국》과 오페라인 《리부셰》, 《팔려간 신부》가 있다.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이 프라하에 나가 프록시에게 피아노와 음악이론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뛰어나 6세때 피아노 공개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을 꿈꾸었으나, 당시 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었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민중 사이에 저항운동이 확산되었으며, 1848년 눈뜬 그는 국민의용군에 가담하여 [국민의용군 행진곡] 등을 작곡하였으며, 민족운동에서의 작곡가의 역할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혁명 실패 이후의 반동정치에서는 자유로운 음악활동이 억압되었기 개설하였으며, 지휘자·작곡가·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다. 1860년대 오스트리아 정부의 탄압이 느슨해지자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운동이 되살아자 귀국하여 민족운동의 선두에 서서 지휘자·작곡가·평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862년 체코슬로바키아 국민극장의 전신인 가극장(假劇場)이 프라하에 건립되자 이 극장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상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그해 1874년 50세의 한창 나이에 숙환인 환청(幻聽)이 악화되어 10월에는 귀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으며, 그는 모든 공적 활동을 중지하고 프라하 교외에 은퇴하였다. 1883년 말부터는 정신착란증세까지 나타났으며, 1884년 프라하의 정신병원에서 사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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