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클래식

Faure / Pavane

by DAVID2 2012. 10. 18.

 

 


 Faure / Pavane

포레 / 파반느  F단조 작품 50


Faure, Gabriel Urbain / Pavane 작품 50

Tubaroque,  Walter Hilgers

파반느는 16세기 초 스페인의 느릿한 2박자의 궁정무곡인데
공작새(pavo)를흉내 낸 기품있는 자태의 춤에 그 어원을 두고있다.
로코코 시대의 우아한 파반느 무곡 양식이 바탕이 된
안단테몰토 모데라토의 이 작품은 3부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주제는 작곡가의 전 작품 중 첫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서정미가
넘친다. 극적인 중간부를 포함 포레다운 정교하고 날렵한
세련미로 인해 널리 사랑받는 소품이다
 
느릿한 2박자의 무곡. 어원은 이탈리아의 도시 파도바(옛 이름 Pava)에
있으며, 파반은(파도바풍 무곡)이라는 뜻이다. 에스파냐어로 파보(pavo)라고

 하는 공작의 우아한 동작을 흉내낸 곡으로 위엄있는 모양으로 천천히 춘다.
1508년 류트곡으로 처음 나타나 20년대부터 유럽에 널리 퍼졌다.
느린 2박자이며 종종 빠른 3박자의 가야르드가 이어진다. 50년 이후 파반과
가야르드는 파사메초와 살타렐로로 바뀌었으나, 영국의 버지널악파는
여전히 작곡을 계속하여 예술적으로완성시켰다.
1600년 이후 파반은 파두아나라는 이름으로 독일 초기의 모음곡 중
양식화되어 느린 반주형의 곡이 되었다. 근대에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의 M.J. 라벨과 R. 본 윌리엄스 등이 명곡을 남겼다.
 

 


NHK Symphony Orchestra
Conductor, Vladimir Ashkenazy



Orchestra of Ukraine's National House of Organ and Chamber

Music (Andrew Lyon, Conductor)



Il Divo / Isabel (Pavane의 Crossover 버젼)

 


Gabriel Faure (1845 파미에르, 아리에주-1924 파리)

프랑스의 작곡가.

몽고지 푸아 사범학교의 교사이자 교장이었던 T. 포레의 아들인 그가 최초로
음악에 감동한 것은 아버지의 학교 부속 예배당에서 하르모늄에 귀를 기울였을
때였다. 9세 때 니데르메이에르 고전 종교음악 학교의 학생이 되기 위해 파리로
가고부터는 집에서 떨어져 아무런 격려도 받을 수가 없었다. 파리에서의 음악 공부,
또 다른 일반 교과의 공부도 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불만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상태는 그가 젊고 뛰어난 피아노 교사 생상을 만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생상은 그에게 슈만, 리스트, 바그너의 음악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그 당시 그는 그의 최초의 작품인, 빅토르 위고의 시에 의한 가곡
나비와 꽃(1861)을 작곡하고 그 후 잇달아 몇 개의 가곡, 로망스,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로망스(1863), 장 라신느에 대한 찬가(1865)를 작곡했다.
20세 때 포레는 화성법에서 2등상, 작곡 부문에서 1등상, 피아노에서 우등상을
타면서 니데르메이에르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렌에 있는 성 소뵈르 교회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포레는 무엇보다도 낭만주의로부터 길러졌고, 항상 표현적이고 내성적인 음악을
위하여 싸운, 19세기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종종 그의 이름과 결부되어
이야기되는 드뷔시, 라벨 등과는 달랐던 그는 20세기를 이끌어 가는 음악상의
각종 투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가 다른 작곡가들로부터 받은 최후의
충격은 1902년의 펠레아스와 멜리상드의 초연이었다. 그 후에 만들어진 포레의
성악 작품에는 드뷔시의 이 작품에서 받은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는 침묵의 영역(청각의 상실)으로 들어가서, 작곡법도 종종 금욕적이라고
평해지는, 매우 관념적인 제3기의 경향을 띠게 된다.실제로, 그가 남긴 작품은
3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1880년까지로, 여전히 매우 낭만파적이고
살롱의 유행, 사교계의 생활과 결부되어 있다. 그에 비해서 제2기(1881~1902)는
작곡가의 개성이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다채로운 눈부심을 가진 화성(우아한
노래), 오케스트라의 폭발하는 듯한 색채(프로메테) 같은 특징을 발전시킴으로써
관능적이고 열기를 띤 그의 예술이 태어났던 것이다. 청각을 상실한 제3기로
들어서면, 그는 이제까지의 방법을 모두 팽개쳐 버린다. 만약 그가 청각을 상실하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제2기적 경향을 계속 밀고 나갔을 것이다.
포레는 본질적으로는, 그가 만년에 그러했던 것 같은 내성적, 금욕적인 작곡가는
아니다. 따라서 제3기의 그를 보고 그의 힘참, 그의 낭만주의를 부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주로 조용한 매혹과 정묘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지중해인이었으며, 피아노4중주곡이 말해주듯이 정열적인 사람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