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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클래식

Shostakovich /Symphony No. 5 in D minor op. 47

by DAVID2 2012. 11. 6.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혁명)

USSR Ministry of Culture Symphony Orchestra

Gennady Rozhdestvensky, Cond  

1악장 Moderato-Allegro non troppo-Moderato   

2악장 Allegreto

3악장 Largo

  

4악장 Allegro non troppo

 

4악장 피날레 부분에 종소리가 있는 것이 연주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
교향곡의 주제는 인간성(인격) 확립이다. 작품은 일관되게 서정적인 분위기이며, 나는 중심에 서서 사람의 인간이 겪을 있는 모든 경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피날레에서는 지금까지 등장한 모든 악장의 비극적인 긴장감을 해소시키고,
긍정적인 인생관과 삶의 기쁨을 맛볼 있도록 이끌고 있다..."
"...
웃어라, 웃어! 웃어야만 ! 그리고 인민들을 위하여 계속 웃겨야 ! 그게 네가 과업이란 말이다!"
- 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

 

 
Symphony No. 5 in D minor op. 47 전곡

 BBC Symphony Orchestra

Gergiev, conductor

 

 
쇼스타코비치 (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

 

1906 9 25 (러시아) - 1975 8 9
1945
레닌그라드 음악원 교사
1943
~ 1948 모스크바음악원의 작곡교수
1940
페테르부르크에서 방공감시원으로 종군 

 

 얼어붙은 땅의 휴머니즘 -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
80
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은밀히 유통되던 카세트 테이프 가운데 '혁명'이라는게 있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 교향곡 5 D단조.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 사람의 작품으로 제목까지 불온하기 짝이 없으니 당시에는

몰래 들어야 하는 음악이었다. 은밀한 호기심으로 곡을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곡을 '인터내셔널가' 버금가는 이념 음악으로 신비화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음악 자체에 대한 이해는 뒷전이었다. 30년대 소련. 스탈린 1 숭배 체제

하에서 3천만 명이 숙청 당한 공포 정치의 시대였다. 어떤 음악을 써야할지 작곡가보다

'' 알던 시대였다. 문화 예술은 암흑 속에서 낙관주의를 설파해야 했다.
당의 지침에 순응하지 않는 예술가에게는 어김없이 '형식주의' '타락한 자본주의' 등의

딱지와 함께 생명의 위협이 가해졌다. 이념과 체제의 잣대로 음악을 재단하던 시대였다.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1936
1,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 "음악이 아니라 횡설수설하는 음표 더미들"이라는 <프라우다> 비판을 받았다.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인민의 '으로

낙인찍혔다. 쇼스타코비치는 그해에 완성한 교향곡 4 C단조의 초연을 포기해야만 했다.

짙은 고독과 염세적인 분위기에 싸인 곡은 '타락한 부르주아 음악'으로 평가될 예상됐고, 그것은 작곡가의 신변을 위협할 분명했다. 1937 11월에 발표한 교향곡 5번은 스탈린의 압제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대답이었다. 1악장과 3악장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일소하는

4악장의 당당한 화음과 강력한 타악기의 향연은 아무리 혹독한 억압에도 꺼지지

않는 민중의 승리를 표현했다고 해도 좋고, 운명을 대하는 개인의 낭만적인 의지를

그렸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스탈린 체제의 전진과 승리를 찬양하는 것은 작곡가의 의도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관변 비평가들은 '낙관적 비극의 전형을 그렸다'

' 밝은 미래의 비전을 들려주었다' 등의 찬사와 함께 쇼스타코비치를 복권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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