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에 서울 YMCA가 운영하던 청소년 쉼터 "청개구리"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양희은의 음악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인 김민기였다.
김민기가 없었다면 현재의 양희은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육군 대령이었으나, 39세의 나이로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집안이 기울어 대학시절 끼니는
물론이고 교통비조차 없어서 걸어다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해야만했고
무대에 올려 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이 바로 송창식이었다. 송창식은 자신이 노래를 부르던 명동의
맥주집에 데리고 가서 자신의 공연시간 10분을 떼주면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놀러와 설날 특집 세시봉 콘사트때 양희은이 직접 언급. 송창식에게 '형 저 노래 하고 싶어요' 라고
하자 송창식이 '노래 하고 싶어?' 라고 묻고는 자신이 공연하던 맥주집에 데려가서 자기 공연시간의
일부를 때줘 무대에 세워줬다. 받아준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양희은은 맹랑하게 사장에게
가불을 부탁했고 4만원을 받아냈다. 당시 국립대학교 한학기 등록금이 7천원이었다.
사장이 엄청난 대인배였던 셈. 물론 송창식을 믿고 내준 게 더 컸겠지만. 사람 추천 안하기로
유명한 송창식이 추천한 사람은 양희은이 최초라고 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1년 9월에 발매된 양희은의 첫 정규앨범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을 냈는데
여기에 수록된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세노야 세노야"는 양희은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 되었다.
하지만 아침 이슬 금지곡이 되면서 그녀의 노래들도 덩달아서 금지곡이 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녀의 대표곡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못이루어지냐라는 황당한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 "작은 연못"의 경우는 김종필과 이후락의 권력다툼을 비꼬았다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돼버렸다. 무려 30여곡의 노래가 금지곡이 돼버렸으니... 이때는 별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금지를 먹이는게 허다했다. 송창식의 "왜 불러"만 해도 사용된 영화에서 청년 둘이
장발 단속을 피해 튀는 장면에서 나와서 공권력을 조롱한다는 이유로 금지를 먹었던 시대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그녀는 1975년에 정부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 가수상을 수상했다. .
양희은 / 한계령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음악 > 가요·가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식스 / 초원의 사랑 (0) | 2012.12.09 |
---|---|
최진희 / 물보라 (0) | 2012.11.19 |
투코리언스 / 벽오동 심은 뜻은 외 (0) | 2012.11.05 |
패티 김/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0) | 2012.11.04 |
양희은/거칠은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상록수) (0) | 2012.11.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