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바다
가진 거라곤 가난뿐이라
남들 다 먹이는 돼지고기 한번
못 사주는 게 한이 되어
자식들에게
생선 한 토막이라도 먹이려고
낚시를 시작했다는 노부부는
사라지는 건 모두 그리워지는
조각난 슬픔 속에
철없는 자식들의 무게까지 짊어지느라
술 한 잔에 허공을 담아 마시며 살아왔지만
부부라는
가슴과 가슴으로 젖어오는 행복 하나로
자식 다 키워 떠나보내고
둘만 남은 집과 그리 멀지 않은 방파제에 나와 앉아
오늘도 고기를 잡는다는 할아버지는
“ 우리 할멈이랑
늘 같이 와서 낚시를 했지“
“그런데 왜 같이 안 오셨어요?”
“지금은 다리가 아파 걷기가 힘들어
화장실만 겨우 다닐 정도인데 여길 어떻게 오겠나“
새벽 일찍 나와 폐지를 줍고 남은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이렇게 바다로 온다는 할아버진
"오늘은 우리 할멈 좋아하는 고등어나 잡아볼까?"
라며
너털웃음을 바다에 던져놓고
한가로운 하늘을 올려다보고 계셨는데요
“할아버지….
컵라면 하나 드릴까요?“
“젊은 사람이 마음 씀이 고맙구먼“
뜨거운 물 하나로 뚝딱 차려진
컵라면을 신기해하며
“요즘 별것이 다 나오는구먼“
“할아버지도 물 부어 드릴까요”“
“난 아침 먹은 게 속이 안 좋아서
나중에 집에 가서 먹으려고“
필 때가 아름다운 꽃보다
질 때가 아름다운 잎 같은
할머니를 두고 혼자 먹는 게 목이 걸려서인지
낚시통에 고이 모셔둔 할아버지는
세상 고마움 다 짊어진 미소를
감추지 못하시더니
“난 오늘 일찍 가볼게.”
“ 이제 막 물이 들어오는 것 같은데
왜 가시려고요?“
얼기설기 풀어 헤쳐진 낚싯대를
주워 담은 할아버지는
지나는 바람을 핑계 삼아 일어서더니
“젊은이….
물만 붓고 3분만 기다리면 된다고 했지?“
할머니에게 빨리 가서 끓여드리고 싶은 속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달빛에 얼고 햇살에 녹아든 집으로
바람의 등을 타고 달려간
할아버지와 젊은이가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흐른 뒤였는데요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할아버지…?“
“왜 이제 오는가 들물이라 한참 재미있었는데….“
“오늘은 더 많이 잡으셨네요“
달님이 마중 나올 때까지
낚시질하시던 할아버지는
오늘은 애써 잡은 고기를 젊은이에게 건네주며
“자네가 가져가게나….”
“할머니 구워 드리셔야죠?”
“이제 울 할멈이 생선이 지겹대….“
삶의 터전이 된 바다에
기대어 사시던 할아버지는
잡은 고기를 젊은이의 어망 안에 넣어주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오늘따라 왠지 슬퍼 보여서인지
“할아버지….
깜깜해서 걸어가시려면 힘드시니까
제가 집까지 태워드릴게요“
“늘 가는 길인 걸 뭐 하려고“
마다하는 할아버지를 태운 차가
한적한 언덕길을 따라 멈춰서더니
남은 길을 힘들게 올라가시는 뒷모습을 비춰주고 있던 젊은이는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지워진 길을 뒤따라간
그곳에는
불을 피운 지 오래인 듯한
냉골이 된 연탄아궁이 옆에는
다 타버린 연탄 몇 장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습니다
슬픔 월 슬픈 일이 지워진 하루에
또 다른 하루가 흐른 어느 날
불을 피울 수 없어
잡은 고기를 주고 가야만 했던
할아버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
바닷가에서 홀로 낚시를 하고 있던 젊은이는
어둑해진 밤길을 달려
할아버지 집 근처 연탄집이라고 써놓은 허름한 가게에 들어가더니
연탄 두 장을 들고 나와
할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걸어간
얼마 뒤
“임자….
냉골이었던 방이 왜 이리 뜨끈하지?“
“연탄 안 땐 지가 한 달이 넘어가는데
뭔 방이 따뜻하다고 그러는 거예요“
“여길 만져봐….”
활활 피워놓은 연탄불 위에서
서로의 언 손 녹이며 맛있게 구워 먹을
갓 잡은 고등어를 놓아두고는
노란 달님이
미소 짓는 비탈길을 따라
젊은이는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산꼭대기 맨 끝 집에
연찬 오백 장만 배달해 주세요“
라는
말은 바람속에 남겨놓은 채….
<출처: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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