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부탁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부산 근교 김치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에게 큰 위기가 닥치고 말았는데요
기업체 구내식당에서 값싼 중국산을 납품받으면서 부도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 사장님은
백발이 될 때까지 애써 키워온 회사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가 된 것에 가슴 아파하며
거래해 왔던 곳들을 돌면서 눈물의 부탁을 하고 있었는데요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회사도 어려워서 비용 절감을 안 하면 안될 처지라, 죄송합니다“
다니는 곳곳마다 눈물의 부탁을 하고 다녔지만 돌아오는 거절에 더 이상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어진 사장님은
“김 부장….
회사 건물 팔아서 직원들 밀린 급여랑 퇴직금 줄 준비하게….“
“사장님께서 39년간 키워온 회사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잠들지 않은 도시 곳곳을 누비며 걸어왔던 지난 시간을
먼 산 긴 그리움으로 돌이켜 보고 있던 사장님의 귀에
“사장님….
오성 그룹에서 담당부장이 사장님을 뵙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분명 중국산 가격에 맞춰달라는 소리할 게 뻔하지 않겠나?”
백발의 사장님은 남겨진 가을비와 작별하듯 마지막 눈물의 부탁을 하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넣어주신 견적대로 납품해 주십시오”
뜻밖의 제안에 준비해 간 눈물부터 흘리던 사장님에게 담당부장은 낡고 오래된
통장 하나를 내밀고 있었는데요
“사장님….
이 통장 기억하세요?“
아무런 기억을 못 하는지 통장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장님에게
마주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마음 하나가 있다는 듯
책상에 놓은 작은 액자 하나를 가져와 건네주는 게 아니겠어요
“아니 이분은 우리 회사 경비실에 근무하던 유경섭 씨 아닌가요?“
액자 속 사진을 뚫어져라 보던 사장님의 말에
“제가 유경섭 씨의 손자입니다“
장례식장에서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울던 그 아이였다며
부모 잃은 저를 키워주시던 할아버지의 장례식날 오셔서
제 손에 통장 하나를 쥐여주며
“꼭 이 돈으로 공부해서 큰사람 되거라“ 라며
쥐여주신 그 통장이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게 꿈과 희망을 주셨다는 말에
메아리쳐 오는 가슴을 누르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던 사장님을 감싸안으며
“할아버지께서 가끔 사장님이 주신 거라며 챙겨온 걸 가슴으로 안으며
어린 전 알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이 산타클로스였다는 걸요.."
베풂은 돌고 돌아 내게 온다는 걸 알게 된 사장님을 보며
“39년 지켜온 사장님의 장인정신을 믿겠습니다….“
나눈 사람은 잊어도 받은 사람은 기억하는….
가치 있는 삶을 베푼 사장님이 멀어져간 자리에 앉아
책상에 놓인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말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저 잘했죠..“ 라고….
<출처: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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