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처음으로 다녀온 이래 23년에 이어 올해초 세번째로 다녀온 서소문역사공원의
겨울풍경이다. 서소문 순교지에 세워진 성지공원인 이곳은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일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그리고
1866년부터 1873년까지의 병인박해기를 거치며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요즘 겨울철이라 그다지 볼거리는 없었지만 지난 23년 1월에 찾았을때 공원 지하에
위치하고 있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일부 구역만
보고온지라 다시 찾았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당고개, 새남터, 그리고 절두산과 더불어 조선시대 공식 참형장이었다.
이는 사직단 서쪽에 처형장을 두어야 한다는 [예기]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었다.
또한, 서소문 밖 네거리가 정부 사법기관인 형조·의금부와 가깝고,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칠패시장’과 인접하여 일벌백계(一罰百戒)가 가능한 공간적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서소문 밖에서의 행형기록은 연산군 10년(1504) 때부터 기록에 등장하는데, 죄인을
이곳에서 능지처참한 후 머리를 베고 시신을 전시하여 뭇 사람들에게 보였다는 내용이다.
이후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는 정조 사후(1800)부터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된 천주교도에 대한 처형이 주로 이루어졌다.
2014년 8월 16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 시복식에 앞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를
찾아 참배하고, 이후 시복식에서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123위를 복자로 선포하였다.
이 중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복자는 27명이다. 따라서 교회사적으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단일 장소에서 최다 성인과 복자를 배출한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이다.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라는 두개의 간판이 서 있지만 사실상 순교성지의
지상은 공원으로 지하는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관리 운영되고 있다.
순교자 현양탑
노숙자 예수 (티모시 슈말츠 작품, 2013)
두께우물(망나니 우물) 망나니가 사형집행시 칼을 씨었다는 우물이다.
서소문밖 연대기
서소문의 자음들
월락재천수상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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