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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좋은글

고단한 아버지

by DAVID2 2013. 6. 18.

 

 

고단한 아버지   

 

어느 작가가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고 했다.
아무도 이 말이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삶의 근원이자 안식처다.
그 이름을 되뇌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영국문화협회가 영어를 쓰지 않는 102개 나라, 4만 여명에게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고르라고 했다.
1위는
Mother(어머니)였다.
Father(아버지)는 이 영국 홍보기구가 발표한 단어 목록 70위에도 끼지 못했다.

하긴 요즘 아버지만큼 고단하고 썰렁한 존재도 드물다.

 

마종기(재미 시인, 의사)의 시에서 멸치는 영락없는 아버지 신세다.
아내는 맛있게 끓는 국물에서 멸치를 집어내 버렸다. 국물을 다 낸 멸치는 버려야지요. 볼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
멸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
남성 성(
)인 부성(父性)이 스러져가는 시대에 아버지는 혼도 진도 다 빠지도록 돈 버는 기계일 뿐이다.
자식이 보호막을 벗고 제 힘으로 서는 순간, 아버지는 그나마 존재 이유 마저 잃어버린다.

 

자식에게 아버지는 흔히 넘지 못할 장벽이거나 원망의 대상이다.
작가 조정래는 아버지가 대처승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중학교 졸업 후 30여 년 만에야 아버지의 고향 절집을 찾아간 뒤 승려의 아들임을 처음 글로 고백한다.

그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에 눈뜨면서 아버지와 화해하게 됐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아버지의 수난에 얽힌 의문과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그 결실이
태백산맥이다.

 

함께 덮고 자던 이불을 내 아이가 돌돌 감고 혼자 잔다
 잠결에 나는 또 아버지 이불을 뺏어 칭칭
 몸에 감고 잔다
 아버지는 혼자 아버지를 덮고 주무신다
 아버지라는 이불이 추우신지 몸을 웅크리고
가끔 마른 기침을 하신다


이기윤의 ‘섣달 그믐밤
도 아버지가 돼 비로소 아버지 마음을 알게 된 아들의 이야기다.
덮고 자던 이불을 아들에게 빼앗기고도 아무 말 못하는 아버지.
아들은 그 춥고 속 깊은 고독을 체감한다.

 

자식 특히 아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야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 볼 눈을 뜨게 된다.

아들도 아버지처럼 실수도 실패도 해보고 후회도 하는 동안 아버지가 결코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 연민은 아버지를 극복하는 디딤돌이 된다.
그러고도 많은 자식들이 아버지의 손 붙잡기를 머뭇거리다 떠나 보내고 만다.
미완의 화해는 그 다음 대(
)에도 물림 하기 십상이다.    

-오태진(조선일보 논설위원) 조선일보 만물상’에서 - 

British Council이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실시한 위 조사에서 Passion(열정)과 Smile(미소)이 각각 2, 3위를

차지했고,Love(사랑)는 4위, 자유를 뜻하는 Freedom’과 Liberty는 모두 10위 안에 포함됐으며 Peace(평화)가

11위를 차지하였는데 ‘Father는 순위가 발표된 70위 안에 끼지도 못했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단어를 조사해도 어머니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버지 70위에도 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어쩐지 나를 서글프게 한다.

이 글을 읽으며 미국 극작가 Arthur Miller의 희곡 세일스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을 떠올리는 것은 나 혼자만일까?

'예술/문학' 카테고리에 올린 네 번이나 영화화된 이 극의 
희곡을 장영희 교수가 해설한 글 ‘꿈꾸는 아버지’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MBN [고수의 비법 황금알 27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201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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