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손이 두 개일까요?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을 알고 계신가요?
70억 명이 사는 지구를 100인의 마을로 축소해서 흥미롭게 설명한 책입니다.
이 마을에는 아시아인 61명, 아프리카인 13명, 북 남미인 13명, 유럽인 12명 등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 중 33명은 기독교, 10명은 이슬람교, 13명은 힌두교, 6명은 불교, 5명은 천지 만물에 깃든 영혼을 믿고, 24명은 기타 종교이거나 무교입니다.
전 세계가 가톨릭교인이 12억 명을 넘었다니 기독교인 중 천주교 신자는 16명인 셈이고요.
이런 식으로 식량, 에너지, 전쟁, 소득 불평등의 세계 문제를 알기 쉽게 전하는 책이라 저도 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에게 적극 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책 제목이 마음에 걸립니다. 더 이상 세계를 '마을'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마트 폰 하나면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검색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지구촌이 아니라 지구 집, 그것도 바로 옆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집이라고 해야 할겁니다.
1994,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는 100일간 100명이 처참하게 죽거나 다치고 200만 명이 옆 나라로 피신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국제사회는 한참 후에야 "어머,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했지만, 이제는 남 수단이나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를 수도,
모른 척할 수도 없습니다. 유리 벽 건너 옆방 사람이 배가 고파서, 혹은 병에 걸려서 괴로워하는 게 훤히 보이는데 어떻게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든 도와야 우리 마음도 편치 않겠습니까?
"우리나라도 도울 사람 많은데 왜 다른 나라까지 도와?" 제가 많이 듣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력 10위권인 한국에서는 정부나
이웃 등 우리 힘과 마음을 합치면 얼마든지 도울 수 있습니다. 반면, '옆방'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기조차 어렵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3초마다 극심한 영양실조와 각종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벼랑 끝에 손끝만 걸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손 내밀어 주고 싶지
않으십니까?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랬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40년간 해외에서 막대한 원조를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를 도와주던 나라에서도 '우리도 힘든데 왜 한국까지 돕느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어렵게 설득하며 우리를 끝까지 도와준 덕분에 한국은 1991년 원조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런 우리들이 신음하는 '옆방 사람들', 벼랑 끝 아이들'에게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보내는 건 마땅하고 옳은 일 아닐까요?
지구 집의 일원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 딸로서 말입니다.
저는 구호활동을 하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왜 손을 두 개 주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 손은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신을 위해서, 그러나 나머지 한 손은 우리보다 약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라는 뜻이라는 걸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손도 아름답지만, 그들에게 지금 자기 손안에 있는 것을 기꺼이 나눠주는 손을 하느님은 훨씬 예뻐하실
거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지금 두 손을 한번 펴보세요. 어려 분은 하느님이 주신 그 손, 어떻게 쓰고 싶으신가요?
한비야, UN자문위원
<2013.6.23. 서울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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