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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좋은글

경주 ‘만석꾼’ 최부자와 노블레스 오블리제

by DAVID2 2013. 9. 1.

모처럼 남부지방에 백설이 장관을 이뤘다.

차장 밖으로 내다보이는 경주역 근방도 그 눈부심이 아름답다.
백설의 아름다움과 포근함을 느끼며 경주지방의 수백 년 "경주 만석군 최부자" 생각에 미친다
“권력과 부 동시에 가질순 없다” 며 진사
이상 벼슬을 멀리해온 경주 최부자 후손들은 광복 후 사재를 털어 대구대학을 세웠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성경말씀이 있지만, 경주의 최부자는 부자면서도 존경을 받은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였던 최 부잣집은 12( 300) 동안 계속해서 만석군을 지낸 집안으로 유명하다.

그 비결을 살펴보자.

 

첫째로는 부자로서의 도의를 스스로 의무화한 절제 된 기준이다.
‘흉년에 땅을 사지 않는다.
흉년이 들면 수 천명씩 굶어 죽는 시대에서는 흉년이야말로 없는 사람에게는 지옥이었다
“다급하니까 흰죽 한 그릇 얻어먹고 그 대가로 팔게 된 논”이라는 의미의  “흰죽 논”까지 등장하던 시절,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당장 굶어 죽지 않기 위하여 헐값으로 내놓은 전답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지만, 최 부자는 가진자의 도리가 아니라며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

 , “파장 때 물건을 사지 않는다.장날 물건들은 석양 무렵, 값이 뚝 떨어지기 마련이다. 부자들은 오전에는 절대 물건을 사지 않고 파장 무렵까지 인내하면서 “떨이” 물건을 기다렸지만, 최부자는 항상 오전에 제값을 주고 물건을 구입하였다.
그러자 상인들은 이 집은 물건값을 깎지 않는다는 신뢰가 형성되어 질이 좋은 물건을 최 부자 집에 먼저 가지고 갔다

게다가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말라.최 부잣집은 9대 진사를 지냈다.
진사는 초시 합격자의 신분으로 양반신분증의 획득인 셈이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동서를 막론하고 돈 있으면 권력도 잡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러나 이 집안은 벼슬이 높아질수록 감옥이 가깝다고 여기며 권력을 배격했다.

 이 집안의 며느리들은 “치마양반”으로 통한다. 시집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조선시대 창고의 열쇠는 안방 마님이 가지고 있던 시대로서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여자들의 절약정신이 중요했다. 보릿고개 때는 집안 식구들도 쌀밥을 먹지 못하게 했고, 은수저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백동 숟가락의 태극 무늬 부분에만 은을 박아 썼다. 7대 조모는 삼베 치마를 하도 오래 이곳 저곳을 기워, 물에 옷을 집어넣으면 옷이 불어나 3말의 물이 들어가는 “서말 치 솥” 단지가 꽉 찰 지경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집에 시집온 며느리들은 모두가 영남의 일류 양반집이었다. 본인들은 진사 급이었지만, 만석군이다 보니 사돈이 된 집안들은 명문 집안이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치마양반”이다
 

둘째는 스스로 의무화한 절제 된 기준으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가 남에게 베푸는 수범적 기준의 실천이다.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한다. 돈은 가속성을 지녀 어느 시점을 지나면 돈이 돈을 벌고, 멈추기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최 부자는 만석에서 과감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그 이상은 내 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른 부자들이 소작료를 수확량의 70% 정도 받았다면, 최 부자는 40% 선에서 멈췄다. 소작료가 저렴하니까 경주 일대의 소작인들이 앞다퉈 최부자 집 농사를 지으려고 줄을 섰다고 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다지만 최 부자가 논을 사면 나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박수를 쳤다
 

,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최 부잣집에서 1년에 소비하는 쌀의 양은 대략 3000석 정도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 절반은 식구들 양식으로 썼다. 나머지 절반은 과객들의 식사대접에 사용했다. 최부자집 사랑채는 1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부잣집이라고 소문나니까 과객들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고, 과객들이 묵고 가는 사랑채에는 독특한 쌀 뒤주가 있었다. 두 손이 겨우 들어가도록 입구를 좁게 만든 뒤주였는데, 과객이면 누구든지

이 쌀 뒤주에 두 손을 넣어서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다음 목적지까지 갈 때 소요되는 여행경비로 사용하라는 뜻이다. 입구를 좁게 한 이유는 지나치게 많은 양은 가져가지 말라는 암시였다.

최 부자 얘기를 새삼스럽게 하는 이유는 최 부자를 통하여 사회지도층의 도덕성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이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프랑스어로 Noblesse oblige” 로  영어격언 “The nobly born must nobly do” 즉,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부자의 고장 경주지방에 새하얗게 내린 눈()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맑게 하고, 최 부자의 모범적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 실천사와 어우러지며, 온갖 부도덕과 오물로 더렵혀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백설같은 높은 경고와 도덕성을 회복하고 실천하라는 깨우침으로 다가온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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