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요계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이들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서태지와
아이들일 것이다. 트로트와 발라드 드리고 이지리스닝 팝 스타일의 가요가 이끌던
우리 가요계에 새로운 스타일의 폭풍을 일으킨 사람이 서태지라 해도 과연이 아니다.
테크노 팝, 댄스음악, 랩이 혼합된 스타일의 음악을 소개한 우리나라 댄스음악의
선구자라 할수 있는 것이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들의 히트곡중 3곡을 선곡하였다.
시나위의 해체 이후 서태지는 당시 대한민국에 막 도입되기 시작한 미디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때의 미디 작업으로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등 서태지와 아이들 1집에 수록될 곡들의
일부가 만들어진다.[새로운 음악 활동을 모색하던 서태지는 1992년 1월 양현석, 이주노를 만나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고 1992년 4월에 1집 《Yo! Taiji》를 발표한다. 1992년 4월 11일
MBC의 특종 TV 연예에 데뷔하게 된 그들은 방송 3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를 모두 석권 하였다.
또한 TV저널 올해의 스타상, 서울가요대상 최고 인기상, 스포츠서울 올해의 가수상, 대한민국
영상음악 대상 골든 디스크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과 신인 가수상, KBS
가요대상 15대 가수상등 그해 가요계에 부여된 모든 상을 휩쓸었고 《Yo! Taiji》는
데뷔 음반으로는 최다 판매량인 18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난 알아요
1993년 6월에 발표된 2집은 〈하여가〉로 활동을 시작하여 국내 최초로 220만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다. 또한 다시 한 번 각 방송사 및 언론사의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휩쓸었으며, 각종 상을 수상하게 된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하여가〉의 힙합음악에 국악을 접목시킨 음악과 〈수시아〉의
158비트에 달하는 빠른 멜로디는 1990년대 말 테크노 열풍에 한발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여가
3집 때에는 사탄설 등 서태지와 아이들을 둘러싼 각종 괴소문들이 횡행했는데, 이는 〈교실 이데아〉
를 거꾸로 들어보면 사탄의 메시지가들어 있다는 괴소문이 PC 통신을 통해 전국에 퍼졌고, 언론에까지
보도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이 외에도 동성애자설, 임신설 등이 퍼졌다. 이러한 괴소문들은
MBC 뉴스데스크, KBS 추적 60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교실 이데아〉를 직접 돌려
틀어 사실 무근임을 밝혀내면서 잠잠해졌다.
교실이데아
훗날 서태지는 4집 발표 전에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1~3집 활동 기간 동안 큰 인기를 누린 그들이지만, 너무나 바쁜 일정, 시간에 쫓겨 앨범을
만드는 데 대한 부담이 너무나 컸다고 그 후 당시를 떠올리며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4집
음반은 발매 첫날 30만장이 팔리는 등 총 240만장 이상이 팔려 당시까지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상 세 번째 더블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앨범 발매 때마다 그러하듯, 서태지와 아이들은
각 방송사 가요순위 1위를 휩쓸었고, 〈컴백 홈〉을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학생의 이야기가
각 방송사 뉴스를 통해 전파를 타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또한 <컴백 홈> 방송 출연 당시 립싱크
공연에 반발하여 마이크를 아예 소지하지 않는 등의 파격 행위도 이어졌다.
-이상 위키백과에서 간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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