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클래식

Berlioz / 환상교향곡

by DAVID2 2012. 5. 15.

 

Berlioz / Symphony Fantasy, Op.14

베를리오즈 / 환상교향곡 제 2악장 무도회




환상교향곡 제 2악장 무도회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찾는 그를 아랑곳없이 춤에 한창이다.
그러다가 문득 군중 속에서 발견한 애인의 모습 낯선 파트너와 함께 춤추며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안타까움과 깊은 모정이 화려하고 소박한
무도회의 분위기 속에서 고유하게 그려진다




Symphonie Fantastique Op. 14 (전악장)

The Podlasie Opera and Philharmonic Symphonic Orchestra.
Marcin Nałęcz-Niesiołowski - conductor.

 

 


Louis Hector Berlioz (1803 ~1869, 프랑스)


프랑스 작곡가. 남프랑스의 코트상탕들레 출생. 소년시절 독학으로 악기연주,

작곡을 시도하였다. 1821년 의학공부를 위해 파리로 갔으나, 곧 음악에 매료되어

의학을 그만두고 파리음악원 교수 르쉬르에게 작곡을 사사,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작 발표회 등을 가졌다.
26년 파리음악원에 입학, 27년 파리에서 W.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고 감명을 받아,

주연 여우 H. 스미스슨에게 마음이 끌렸다. 28년부터 시작된 파리음악원에서

 L. 베토벤 교향곡 연주에 충격을 받고, 교향곡을 연구하면서 스스로 교향곡 작곡에

착수, 30년에 《환상교향곡》을 첫 공연하였다.

이 작품은 표제음악의 성립상 획기적인 것으로 표제프로그램에는 스미스슨에 대한

사랑의 체험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또 연인을 나타내는 <고정악상(固定樂想)>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키면서 사용하는 새로운 수법이 채용되었다.

30년 신진작곡가의 등용문인 로마대상을 받고 로마로 유학, 32년에 귀국하여, 이듬해

짧은 교제 뒤 스미스슨과 결혼, 음악평론의 집필을 시작함과 동시에 표제음악의

작곡을 진행하여 G.G. 바이런의 시에 의한 비올라 독주부(獨奏付) 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럴드(1834)》, 극적 향곡 로미오와 줄리엣(1839)》 등을

발표하고, 또 대규모의 《레퀴엠(1837)》도 작곡하였다. 그러나 38년에 발표한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의 실패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42년 이후 벨기에·러시아·독일·영국 등으로 연주여행, 자작을 지휘하고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J.L.F. 멘델스존·R. 슈만·F. 리스트·W.R. 바그너 등과 교제하면서, 한편으로

 서곡 《로마의 사육제(1843)》, 오라토리오 《파우스트의 겁벌(劫罰, 1846)》

등을 작곡, 상연하여 호평을 얻었다.

54∼58년에 걸쳐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어린시절》 《테 데움》, 오페라 《트로이의

사람들》을 작곡하였는데 이것은 베를리오즈의 대작 창작의 마지막 시기가 되었다.
67∼68년 러시아 연주여행에서 대환영을 받았으나, 69년 파리에서 죽었다.

베를리오즈는 음악과 문학을 연결시키는 데 힘을 써, 표제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기초를 다짐으로써 낭만주의음악의 발전을 선도하였다.

이런 면에서 그의 영향은 리스트나 바그너, 동유럽의 국민악파에서 엿볼 수가 있다.

또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의 연주법, 악기의 편성에 몰두, 종래에 없었던 색채적이고

효과적인 음을 오케스트라에서 도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현악기의 각 파트를 더욱 분할하여 사용하거나, 타악기군·관악기군의 과감한 확대,

각 악기의 음색의 개성을 강조하는 등 새로운 오케스트라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 그때까지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하였던 잉글리시호른·하프 등의 악기를 일반 관현악

편성에 포함시켰다. 이 분야에서의 성과는, 저서 《근대의 악기법과 관현악법

(1844)》에 집약되어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문필활동은 평론·여행기·자서전 등 다방면에 걸치며, 독자적인 시점에서

주관성을 강하게 반영한 《회상록》이 유명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