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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클래식

그리그/페르귄트 조곡 제2모음곡, 작품 55

by DAVID2 2013. 12. 15.

 

 

Grieg / Peer Gynt Suite No.2, Op.55 
그리그 / 페르귄트 조곡  제2 모음곡


제 1곡 The Abduction (Ingrid's Lament)

신부의 약탈과 잉그리드의 탄식
야성적인 관현악의 거친 숨결 속에서 신부의 약탈이라는 테마가 묘사되었다. 이어 
권태로움에 못 견딘 페르 귄트는 산속으로 도망친다. 절박한 
오케스트라의 비명 다음에 곧 이어지는 불쌍한 신부의 '탄식'. 두 
개의 모음곡을 통틀어서 가장 튀지 않는 곡으로, 어딘가 좀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곡이다. 페르 
귄트는 그녀를 납치하고 나서 곧 도망간다던데, 끝날 때는 몇 번의 비명이 더 나온다. 
 
제 2곡 Arabian Dance 

아라비아의 춤

동양의 매력에 반해 버린 페르귄트가 예언자처럼 가장한다.

 아름다운 아라비아 소녀들이 예언자의 도래를 기뻐하며 합창하고 춤춘다.

'아니트라의 춤'보다는 좀 더 이국적 이고 활기찬 분위기의 곡. 타악기가 큰 활약을 하고,

피콜로 등의 고음부 관악기가 멜로디를 주도한다

 


제 3곡 Peer Gynt's Return

 


페르 귄트의 귀향

미국에서 금광을 발견한 ‘페르 귄트’는 큰 부자가 된다. 그러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그의 배는 폭풍에 부딪쳐 난항을 계속하다 결국 난파되었고, 그는 재산을 잃은 비참한

몰골이 된다. 격렬한 폭풍우의 광폭한 바다의 정경을 생생히 묘사하였다.

페르 귄트가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도중, 폭풍우를 만나서 배 망가지고 신세 망치고~

파란만장한 인생. 세찬 바람과 성난 파도의 느낌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위협적인 바다를 표현한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어울림이 멋지다. 피콜로의 고음이

 귀에 시리고, 최후에는 드럼 소리가 아주 크게 울려 퍼져서 배가 바위에 부서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페르 귄트가 자기 사나운 팔자를 한탄하는 듯

아주 여린 탄식으로 끝난다.

 


제 4곡 Solveig's Song

 


 솔베이그의 노래

 페르 귄트는 오랜 여정을 마치고 고향의 오막살이로 돌아오게 된다. 백발이 된

솔베이그는 페르 귄트와 만나게 되는데 이곡은 부인의 영원한 순정을 노래한 것이다.

 페르 귄트가 신부를 납치하고 아니트라와 비밀 결혼하고 겨우 돈 좀 모아서 돌아오다가

폭풍우 때문에 빈털터리가 됐어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는 솔베이그.

그녀는 모든 남자가 꿈에 그리는 영원한 여인상. 이 곡은 주인공에 대한

그녀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는데, 선율이 아주 슬프고 아름답다

페르귄트 조곡  제1모음곡을 감상하시려면

http://blog.daum.net/dohihahn/349

 

 

Grieg / Peer Gynt Suite No.1(Op.46) & 2(Op.55)  전곡


Orquesta Sinfónica de RTVE
Guillermo Garcia Calvo - Conductor

Suite No. 1, Op. 46 (1888):
I. Morning Mood (Morgenstemning) 00:01
II. The Death of Åse (Åses død) 04:31
III. Anitra's Dance (Anitras dans) 09:39
IV.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I Dovregubbens hall) 13:14

Suite No. 2, Op. 55 (1891):
I. The Abduction of the Bride. Ingrid's Lament  15:48
II. Arabian Dance  20:14
III. Peer Gynt's Homecoming (Stormy Evening on the Sea) 24:58
IV. Solveig's Song  27:36

 

 

  


1843. 6. 15 노르웨이 베르겐~1907. 9. 4 베르겐.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리그(예전에는 Greig) 가문은 그의 할아버지 때 쿨로뎅

전투 후에 노르웨이로 이민하였다. 아버지 알렉산더는 베르겐 주재 영국영사였고,

어머니 게신 하게루프는노르웨이의 안정된 가문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에서 음악을 배웠다. 6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1858년 바이올린의 거장 올레 불의

추천으로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들어가 멘델스존과 슈만 풍의 음악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늑막염을 심하게 앓았으며 끝내 완전히 치유하지 못했다.
1863년 코펜하겐으로 가서 1864년 노르웨이의 젊은 민족주의 음악 작곡가 리카르트

노르로크사귀면서 음악적으로 발전했다. "그를 통해 북부의 민속 가락과

내 자신의 특성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그리그는 말한 바 있다.

1864~65년 겨울, 스칸디나비아의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설립한

코펜하겐 음악협회 '외테르프'의 창립회원이 되었다. 1867년 사촌 누이동생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했고, 그녀는 그리그의 가곡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가가 되었다. 1865~66년, 1869~70년 겨울을 로마에서 보내던 중,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

 열광적 찬사를 보낸 리스트와 입센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1866년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에 정착하여 노르웨이 정부의 종신연금

(1,600크로나)을 받기 시작한 1874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885년 베르겐 근방에 '트롤드하우겐'이라는 집을 지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스칸디나비아·유럽·영국에서 연주 여행을 가졌으며, 1888년

런던에서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스스로 연주했다.

노르웨이의 민속 전통에 뿌리를 둔 그리그의 음악은 섬세한 서정 감각으로 유명하다. 1867~1901년 사이에 10집으로 된 피아노곡 〈서정 소곡집 Lyriske Stykker〉

을 작곡했다. 활기찬 리듬은 민요와 연관이 깊으며, 화성법은 후기 낭만주의 양식에서

발전한 새로운 것이었다.
〈피아노 협주곡〉 작품 16과 〈현악 4중주 G단조〉 작품 27, 바이올린 소나타 및 

피아노 소나타 각각 3곡 등 일부 작품에서 자유 소나타 형식을 썼다.

피아노를 위한 〈발라드〉 작품 24는 노르웨이의 민속 선율에 바탕을 둔 변주곡이다.

가장 사랑받는 곡은 〈페르 귄트 모음곡 Peer Gynt〉 작품 23과 〈홀베르그 모음곡
Holberg〉 작품 40이다. 노르웨이의 춤과 노래를 편곡한 작품 17, 작품 66과 특히

〈노르웨이 농민 춤곡 슬로터〉 작품 72는 리듬과 화성에 대한 그의 예리한 감각을

 보여준다. 성악곡은 A. O. 비녜의 가사에 곡을 붙인 작품 33과 시가

산의 요정 Haugtussa〉 작품 67이 있는데, 이 작품들에서 그리그는 시의 정서를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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