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에 밥 좀 해주지"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죽음)이 있을 줄 알았지”를 패러디한 건 짐작하겠는데, 왜 하필 밥?
은퇴 후 집에 있는 남편들의 5대 별칭, ‘영식님, 일식씨, 이식군, 삼식이, 사식놈’과는 무관하게 젊어서부터 장사를 해온 그는
애초 신혼에도 ‘영식이’였단다. 결혼한 지 20년째, “마누라 손에 밥을 얻어 먹어본 게 다 합쳐서 한 달이나 될라나?…”
공허한 그의 눈길이 허공에 머문다.
마누라가 밥을 안 해줘서 굶어 죽은 남자가 있다면, 게다가 묘석에까지 그 원망을 새겨두었다면, 남자의 한이란 오뉴월 서리
정도가 아니지 않겠나.
“자기 손으로 해 먹든가, 사 먹으면 될 일이지, 널린 게 식당인데”라고 한다면 너무 무심한 소리.
그 남자는 자기 밥뿐 아니라 자식 밥까지 챙기는 데다 무엇보다 식당을 하는 사람이다.
근데 그 남자뿐이 아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임에도 유독 제 집에서 밥을 굶는 남편들이 부지기수라지 않나.
일껏 돈 벌어주고 마누라한테서 따뜻한 밥상 한번 못 받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자화상이 측은하고 민망하다.
남편들은 왜 그토록 ‘집 밥’에 목을 매며 밥 구걸을 하는 걸까? 밥이 그저 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예의, 원초적 사랑, 일상적 관심과 동의어다.
그러니까 남편들에게 밥은 곧 아내의 애정인 것이다.
그러기에 아내의 사랑을 갈망하고 희구하다 지쳐버린 남편들의 뻥 뚫린 가슴속의 허기짐, 허전함, 소외감, 우울감, 무력감, 결핍감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미운 남편 밥 안 해주는 아내는 복수, 설욕, 앙갚음의 희열에 들뜰까.
같은 여자인데도 이해가 안 간다.
물론 부부관계가 그 지경까지 황폐해진 것이 아내 탓만일 수는 없다. ‘관계’라는 말 속에는 이미 상호성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채워지지 않는 남편의 애정에 대한 불만, 기대했던 결혼 생활에 대한 실망을 기껏 남편 밥 안 해주는 것으로 보복하는 수동·저항적인
아내들의 치졸함도 민망하긴 매한가지다.
다만 위기의 부부, 정서 이혼 상태에 놓인 중년 부부의 갈등 키워드가 ‘밥’이라는 것이 치사하고 서글플 따름이다.
레이먼드 조가 쓴 책 『관계의 힘』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네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끈들이 이어져 있네.
그 끈들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곧 인생 전부라네… 정말 그게 전부야.” 그 거창한 끈이란 곧 ‘관계’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네를 증명하는 것은 자네의 육체도 능력도 아니네.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이 나를 증명해주지. 우리의 몸속에 사람을 사랑하라고
프로그래밍돼 있네. 그 위대한 명령을 따르는 게 순리고 인생이야. 사람은 사람 없이 못 살고, 사랑 없이도 못 사네.
인간의 과업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라네.”
레이먼드 조가 제안하는 관계 맺기의 중요한 요소는 ‘관심, 먼저 다가서기, 공감, 진실한 칭찬, 웃음’ 등 다섯 가지다.
그 남자는 자기 아내에겐 인간 속성으로나 사람 된 도리로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맹점’이 있다고 했다.
다른 남자에게서도 자기 아내는 벽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반대로 남편에 대해 절망적 항변을 하는 아내들도 몇 명 알고 있다. 나는 전적으로 그들의 말을 믿는다.
나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기에.
하지만 밉상스러운 행동이야 어떻든 아내나 남편이나 배우자로부터 사랑받고 싶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갈증은 동일하다.
우리 아내들, 밥은 일단 해주는 게 어떨까. 그러고선 우리가 원하는 걸 받아내보는 게 어떨까.
아무리 흉악범도 밥은 먹여가며 취조하지 않나.
그리고 남편들, 어지간하면 아내에게 먼저 좀 다가서고 관심을 보여주면 안 될까?아니 그런 척이라도 해주면 안 될까?
그래야 무엇보다 밥을 얻어 먹을 게 아닌가. ‘더럽고’ 치사하다고? 싫음 말고.
신아연 작가
[삶의 향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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