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가요·가곡

윤수일/ 아파트

by DAVID2 2014. 6. 8.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윤수일밴드 '아파트'(오리지널 버젼)

 

윤수일밴드 '아파트'(1982)

 

도시의 삶을 체화한 록 밴드의 새로운 사운드

외형적으로 보이는 윤수일의 행보는 선배 최헌과 닮아있었다. 그룹사운드 출신. 그리고 최헌이 '오동잎'이라는

트로트 고고 음악으로 가요계를 점령했던 것처럼 '사랑만은 않겠어요'라는 노래로 인기가수의 대열에 합류한 것

역시 비슷해 보였다. 또 이 히트곡들의 뒤에는 안치행이라는 당대의 기획자 겸 작곡가가 있었다.

안치행은 최헌의 '오동잎'과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비롯해 '앵두'(최헌), '연안부두'(김 트리오) 등을

만들며 1970년대 중후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히트곡 제조기였다.
하지만 '사랑만은 않겠어요'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그렇지 윤수일이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은 그룹사운드 음악,

밴드 음악이었다.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데뷔했던 순간에도 솔로 가수 윤수일이 아닌 윤수일과 솜사탕이라는

밴드와 함께였다(노래들도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제외하곤 다 전형적인 그룹사운드 음악이었다).

하지만 윤수일의 바람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윤수일은 계속해서 '갈대'와 '추억' 같은 안치행이 만든 트로트 성향의 노래를 부르며 그룹사운드 출신

가수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리고 1980년대가 열리면서 윤수일의 새로운 음악 인생도 다시 시작됐다.

1981년 나온 그의 앨범에는 '윤수일' 대신 '윤수일밴드'란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때까지도 그룹사운드란 국적 불명의 용어가 공공연히 쓰이던 시절이었다.

윤수일은 '밴드'란 이름을 사용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