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yer 병장의 ‘투철한 책임감’을 배우자”
미해병 병장 출신, 다코타 마이어( Dakota Meyer) 는, 켄터키의 Greensburg 라는
한 작은 시골 타운에서 건설회사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오전시간 그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백악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한 사람은 백악관의 한 의전팀 비서였다.
그 의전관은 “당신에게 미군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을 주기로
결정이 되었는데, 대통령께서 직접 당신과 통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때 마이어는 “지금 나는 업무 중인데 사적(私的)인 전화는 받을 수 없다.
업무 시간에 제대로 몰두해 일하지 않으면 봉급 받을 자격이 없어진다.” 고
대답하며 대통령의 전화를 거절하였다.
그 비서는 마이어의 말을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였으며, 결국 점심시간(lunch break)까지
기다렸다가, 오바마 대통령은 그 예비역 해병 병장과 통화할 수가 있었다.
군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예비역 병장에게 전화하는 것이 ‘사적(私的)인 전화일까?
더구나 미행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훈장을, 전투 중 탁월한 공적을 이룬
한 해병에게 수여하게 된 것을 통보하는 전화를 과연 ‘사적’인 전화’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그것은 아주 중요한 ‘공적’(公的)인 일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마이어는 지금 현역 군인이 아니다.
그는 지금 한 건설회사의 종업원이다.
그가 생각할 때 그가 하는 ‘공적’(公的)인 일은 회사와 관련된 건설관계 일이다.
따라서 아무리 대통령의 전화이고, 또 국가의 ‘명예훈장’을 준다는 내용일지라도
그것은 마이어가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무관한 일이다.
마이어는 그래서 그것을 ‘사적’인 일로 판단한 것이다.
마이어 해병은 2009년 9월 8일 새벽, 그의 동료 부대원과 함께, 아프간,
쿠나르 지역을 순찰하다가 한 계곡에서 탈레반 군으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현장 지휘관은 일단 부대를 위험 지역으로부터 철수하도록 했지만, 마이어 상병은(당시 21세)
험비(미군의 경장갑전투차량)에 올라 기관총을 쏘아대며 적진을 향해 돌진하였다.
지휘관의 만류에고 불구하고, 팔에 총상을 당하면서도, 다섯 차례나 적진 속에 뛰어 들어가
6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며, 결국 36명의 미군과 아프간 군인을 구해냈다.
그리고 적진에서 전사한 4명의 동료 시신도 수습해 왔다.
이러한 용감한 ‘영웅적’인 공적을 세운 마이어 병장이므로, 대통령의 ‘명예훈장’ 수여에 관한
전화를 얼마든지 ‘공적(公的)인 일로 생각하고 그대로 전화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인데,
마이어는 그것을 ‘사적’인 일로 판단해 거절한 것이었다.
(9월 15일, 백악관 이스트 룸에서 마이어 병장은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영예의 ‘명예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는 미군 역사에서 살아있는 군인 중 세 번째이며,
아프간 참전 미 해병으로는 첫 번째 ‘명예훈장’ 수훈이다.
미군에서는, 명예훈장 수훈자에게는 상급자라도 먼저 경례를 부치는
관례가 있을 정도로 높은 명예의 훈장이다.)
그런데 만일 한국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의 전화인데?
그것은 윗사람에 대한 ‘결례’이다.”
그렇게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대통령의 ‘훈장 수여’에 관한 공식 통보전화가 어떻게 ‘사적’인 전화인가?
그것은’공적’ 전화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판단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더 나아가 혹 “아주 건방진 놈이로군.” 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대체로 (내가 아는 한) 미국 사람들의 의식구조에는 ‘공’과 ‘사’의 구분에 대단히 엄격한 면이 있다.
건설업 종사자에게, ‘업무시간’에, ‘건설업’에 관련된 일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사적’인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미국인들은, 맡은바 ‘일’에 대한 ‘책임 의식’도 대단히 강한 편이다.
한국에서도 물론 ‘공과 사’를 구별하라고들 한다.
그런데 예를 들면 업무시간에 회사에 찾아가 회사원을 면회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한 것 같다.
회사원도 업무시간에 필요하면, 잠깐 자리를 비우고 ‘사적’인 일보는 것, 묵인되기도 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내가 과거 해병대 장교로 근무할 때 일이다.
동해안 지역에서 오키나와에서 이동해 온 미 해병대원들과 한미 합동 상륙 훈련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미 해병대원들의 ‘공적(公的) 업무 수행 스타일과 동시에 그들의 투철한 책임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처음, 겉으로 보기에는 ‘기합이 빠진 것처럼’ 느슨하게 보였다.
그러나 일단 공식훈련이 시작되자, 말단 사병일지라도 맡은바 임무에 대해 대충 하는 경우가 없었다.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빈틈없이 철저하게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았다.
쉬는 시간외에는 절대로 다른 일이나 잡담 하는 것 보지 못했다.
보초병들도, 누가 보든지 안보든지 한 순간도 흐트러짐 없이, 부동자세로,
철저하게 보초를 서고 있었다.
정말 완전하게 실전(實戰)을 치르듯이 훈련에 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군들은 어떤가?
겉으로 보기에는 ‘기합이 빡세게’ 들어간 군인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뭔가 틈이 좀 생기거나 ‘높은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장교들이) 철모를 깔고 앉아
(야외지역이므로 앉을 의자가 없다)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잡담도 하는것이었다.
(이 사례는 물론 내가 경험한 옛날이야기이지만).
한국군 사병들은 한국 측 장교를 보면 ‘기합’이 들어간 자세로 경례를 부친다.
그런데 미군 장교에게는 별로 경례를 부치지 않는다.
(미군 장교에게 경례 안 한다고, 그 미군장교가 기합을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군 해병들은 어김없이 미군 장교나 한국군 장교 구분 없이 경례를 부치는 것을 보았다.
‘공적’으로 볼 때 미군 장교나 한국군 장교 모두 상급자이기 때문에,
어떤 ‘인종적 편견’이나, 사적’인 느낌을 버리고, ‘공적’으로 경례를 부치는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오늘날, 많은 지도적 위치 또는 공직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자기 편리한대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에 급급하며, 또 맡은바 소임을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투철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가 어지러워지며 문제가 많은 것 아니겠는가?
지난번 한국에서의 ‘정전 대란’도 결국 국민들의 ‘무책임’한 전력 과소비와,
그리고 전력 수급 책임자들의 ‘무책임’한 업무 수행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마이어 병장에게서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대통령으로부터 말단 공직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하여 근무하고,
또한 모두 목숨 내건 ‘책임감’가지고 일한다면 우리 사회는 좀더 ‘밝은 사회’,
‘질서 있는 사회’, 그리고 더 ‘나은 사회’로 발전되리라고 믿는다.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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