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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클래식

Beethoven /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by DAVID2 2012. 7. 14.

Beethoven/Symphony No.7 in A major op.92

 


Staatskapelle Dresden
지휘 : Karl Bohm (1894-1981 Aust.)


  이 교향곡은 1812년 42세 때의 작품인데 그는 불안한 생계와 귓병, 위병 등으로

몹시 괴로웠을 때였습니다.그렇지만 그는 쉴 사이도 없이 계속 명작을 써냈습니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무도의 신화라 했으며 지금까지 세계의 예술이 창조 하지 못했던

 명쾌한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던 것입니다.나폴레옹군이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여

유럽을 휩쓸던 때였으며 온 유럽의 모순이 집결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향곡은 그 구성과 수법, 내용, 악기의 편성 등에서 볼 때 그의 교향곡 중에서

 제1위에 꼽힌다는 것입니다.리듬의 요소가 강하다는 점 등은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1813년 봄에 루돌프 디공의 집에서 사적인 발표회가 있었고 그 해 2월 8일에 비인

대학 강당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Beethoven / Symphony no 7 전곡


Leonard Bernstein, conducting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Otto Klemperer conducting New Philharmonia Orchestra

 




악성 베토벤은 고전 음악의 최대의 완성자인 동시에 그 완전한 형식적인 예술에 보다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내용을 담은 위대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영웅적인 백절불굴의

투지로서 모든 난관을 극복한 승리자였으며 철학자이며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애를 실천한 인도주의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은 고전의 형식미에서 벗어나 낭만주의 음악에 문을 연 교량적인

역할을 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음악가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제2의

모짜르트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는 모짜르트처럼 신동은 아니였으나

음악적인 천분을 마침내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7세 때에 그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비인으로 갔습니다. 그의 본격적인 음악 교육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1792년 22세 때에 그가 비인에 나타났을 때는 작곡가라기보다는 먼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겹쳐 들었습니다. 생활은 곤란했고 사랑은 실패했으며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귓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1814년 이래 그는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고통 속에서도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예술이 나타났습니다.
1815년 이후의 작품은 그의 모든 창작 중의. 일대 전환인데 웅대한 구상과 자유로운

형식, 진지한 표현 등은 거성이 아니고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작품은 낭만적인 영향도 받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냉정했으며 안정된 형식미를 갖추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생명의 체험을 합리적인 형식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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