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특별기획

The Beatles (23)/ Beatles의 해산과 유작들

by DAVID2 2013. 9. 17.

 

 

 
 
 
Free As A Bird 
1995년 12월 싱글로 발표된 Beatles의 마지막 음반으로 B면에는 Christmas Time
(Is Here Again)이 수록되었고 Beatles의 다큐멘타리 The Beatles Anthology의
프로모션을 위해 Beatles 생존 멤버들의 재결합 기념으로 발표된 곡으로 영국과
미국챠트에 각각 2위와 6위에올랐던 곡이다.
John Lennon이 생전에 작곡중이던 1977년 미완성곡을 건너받은 나머지 Beatles
멤버들이 완성시켜 Jeff Lynn과 Beatles 멤버들이 직접 제작하였다. Ukelele연주로
 끝나는 이곡의 엔딩부분에 John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궁금해한 이말은"Turned out nice again"이라는 말을 거꾸로 녹음한 결과라 한다.
Free as a Bird 뮤직 비디오는 Vincent Joliet 이 제작하고 Joe Pytka가 감독한
작품으로 단편 M/V 부문의 그래미상(Grammy Award for Best Short Form
Music Video)을 수상한 작품으로 새의 시선에서 바라본 광경을 촬영하였으며
그간Beatles가 출연한 많은 뮤직비디오, 영화 그리고 그들이 생활하고 활동하였던
뜻깊은 장소와 눈에 익은 광경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Free As A Bird (John Lennon의 오리지널 유작 데모 테입)

 

 Free As A Bird  제작과정
 

 

Real Love

 

 1996년 발표된 싱글로 B면에는 Baby's Black이 수록되었으며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챠트 4위와 11위에 올랐다.
Free as a Bird와 마찬가지로 1977년 John이 생전시 작업중이였던 곡을
나머지 Beatles 멤버들이 완성시켜 취입한 곡으로 공식적인 오리지널 곡으로는
Beatles의 마지막 곡으로 The Beatles Anthology에 수록되었다.
John의 음성이 수록된 이곡은 녹음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원본이 아니라 John의
개인 녹음기로 녹음된 음성을 사용하였기 때문데 음질을 개선시키는데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Free as a Bird"와 "Real Love"의 녹음 작업이 끝난후 링고 스타는 이렇게 말했다.

"신곡을 녹음하는 작업은 우리에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예전처럼 자연스러웠고

흥미로왔고 때로는 감동적이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였다.

우리는 다시 Beatles로서는 더 이상 무엇을 할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Beatles의 해산

 

 

1970년 4월 10일, Paul이 공식적으로 비틀즈 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비틀즈의 영광은 결국
70년대까지 이어지지 못하게 된다. 당시 Paul의 심정을 들어보도록 하자 :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가 비틀즈를 해산시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Abbey Road 앨범의 녹음을 마치고 나서 저는 다시 동료들에게 다시 예전처럼 공연을 하는게
어떻겠는냐고 제안했습니다. Beatlemania 시절처럼 대규모 관중을 동원하는 그런 화려한
공연이 아니라 무명시절 때처럼 조그만 클럽 등지에서 활동을 하자는게 제 생각이었죠.
물론 제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때 John이 우리에게 '언젠가 너희들에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나 이제 비틀즈를 해체시키려고 해..."라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모두 입을 벌린 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전에도 Ringo와 George가

외도를 한 적은 있지만, 아무래도 John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심각한 상황이었죠.

John의 1970년 2월에 발표한 Instant Karma가 벌써부터 차트에 등장한 상태였고,
Ringo마저 3월에 Sentimental Journey라는 앨범을 제작한 상태였다. 누가 봐도 4명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상태였고, Paul의 발표로 '드디어 올게 왔을 뿐'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비틀즈의 Let It Be와 John의 첫 솔로작, Instant Karma가 차트 정상을 향해
경합을 벌렸지만, 결국은 Let It Be가 1위를 차지함으로써 비틀즈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Instant Karma는 3위까지 오른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Let It Be가 마지막이었지만,
미국에서는 Let It Be의 후속작으로 The Long And Winding Road가 발표되어 다시

한 번 비틀즈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게 된다.
한편 John과 Ringo에 이어 Paul과 George도 각각 솔로앨범을 발표하며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비틀즈 시절 자신의 쿼타에 묶여 많은 곡을 발표할 수 없었던 George는 지금까지 썩고 있던
수많은 자작곡들을 묶어 Whtie Album보다 한 술 더 뜬 3장짜리 'All Things Must Pass'를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 발표된 My Sweet Lord/Isn't It A Pity 싱글은 1970년 말에
빌보드 차트를 정복함으로써 첫 비틀 솔로 넘버원으로 기록되지만, 훗날 Chiffons의 'He's So

Fine'이라는 곡을 표절했다는 판결을 받게 된다. George는 몇개월 후 굶주리는 방글라데시
국민들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을 대대적으로 개최하며 뜨거운 인류애를 보여주었고,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던 John과 Yoko는 정치 일선에 나서 Give Peace A Chance, Power To The
People, Happy Xmas (War Is Over) 등의 곡들을 발표하며 민중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한편, Paul은 Linda와 함께 Wings를 결성하여 비틀즈 시절처럼 히트메이커로 거듭나게 되며,
가장 걱정되던 Ringo도 여러 음반들과 영화를 제작하며 의외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Fab Four는 이렇게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철천지 원수처럼
지내지는 않았다. 비틀즈의 해산 직후 Paul이 비틀즈를 고소하는 과정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1973년경에는 예전처럼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John, Paul, George, Ringo는 힘을 합쳐 비틀즈의 해산에 공헌(?)한 Allen Klein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며, Ringo의 솔로앨범 'Ringo'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4명 중에서도 특별히
사이가 좋지 않았던 John과 Paul도 이제는 서로 만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관계를 다시 형성했고,
1974년에는 Fab Four가 다시 뭉쳐 음반을 만들자는 논의도 있었다. 각자 솔로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비틀즈를 재결성하는 것은 곤란했지만, 일종의 프로젝트 형식으로 음반을
만드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긍정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John이 1975년 10월에 다시
Yoko와 결합함으로서 이 논의는 중단되었지만, 팬들은 여전히 비틀즈가 어떠한 형식으로든 다시
뭉치게 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1970년대 중반에 등장한 미스테리의 그룹,
Klaatu가 비틀즈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하지만 1980년 12월 8일, 전세계의 비틀매니아들은
이들의 재결합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