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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클래식

그리그/페르귄트 제 1조곡 작품 64

by DAVID2 2012. 5. 18.

 

 

Grieg / Peer Gynt Suite No.1, Op.46
그리그 / 페르귄트 조곡  제1 모음곡

 Morning Mood (관현악 )

Morning Mood (오카리나)

 

Grieg 'Peer Gynt' Suite No. 1, Op. 46 - 'Morning'
Jerusalem Orchestra

 


Grieg / Peer Gynt Suite No.1, Op.46 전곡

Limburg Symphony Orchestra - Otto Tausk, conductor

Suite No. 1, Op. 46 (1888):
I. Morning Mood 
II. The Death of Åse 
III. Anitra's Dance 

IV.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1843. 6. 15 노르웨이 베르겐~1907. 9. 4 베르겐.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리그(예전에는 Greig) 가문은 그의 할아버지 때 쿨로뎅

전투 후에 노르웨이로 이민하였다. 아버지 알렉산더는 베르겐 주재 영국영사였고,

어머니 게신 하게루프는노르웨이의 안정된 가문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에서 음악을 배웠다. 6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1858년 바이올린의 거장 올레 불의

추천으로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들어가 멘델스존과 슈만 풍의 음악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늑막염을 심하게 앓았으며 끝내 완전히 치유하지 못했다.
1863년 코펜하겐으로 가서 1864년 노르웨이의 젊은 민족주의 음악 작곡가 리카르트

노르로크사귀면서 음악적으로 발전했다. "그를 통해 북부의 민속 가락과

내 자신의 특성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그리그는 말한 바 있다.

1864~65년 겨울, 스칸디나비아의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설립한

코펜하겐 음악협회 '외테르프'의 창립회원이 되었다. 1867년 사촌 누이동생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했고, 그녀는 그리그의 가곡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가가 되었다. 1865~66년, 1869~70년 겨울을 로마에서 보내던 중,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

 열광적 찬사를 보낸 리스트와 입센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1866년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에 정착하여 노르웨이 정부의 종신연금

(1,600크로나)을 받기 시작한 1874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885년 베르겐 근방에 '트롤드하우겐'이라는 집을 지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스칸디나비아·유럽·영국에서 연주 여행을 가졌으며, 1888년

런던에서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스스로 연주했다.

노르웨이의 민속 전통에 뿌리를 둔 그리그의 음악은 섬세한 서정 감각으로 유명하다. 1867~1901년 사이에 10집으로 된 피아노곡 〈서정 소곡집 Lyriske Stykker〉

을 작곡했다. 활기찬 리듬은 민요와 연관이 깊으며, 화성법은 후기 낭만주의 양식에서

발전한 새로운 것이었다.
〈피아노 협주곡〉 작품 16과 〈현악 4중주 G단조〉 작품 27, 바이올린 소나타 및 

피아노 소나타 각각 3곡 등 일부 작품에서 자유 소나타 형식을 썼다.

피아노를 위한 〈발라드〉 작품 24는 노르웨이의 민속 선율에 바탕을 둔 변주곡이다.

가장 사랑받는 곡은 〈페르 귄트 모음곡 Peer Gynt〉 작품 23과 〈홀베르그 모음곡
Holberg〉 작품 40이다. 노르웨이의 춤과 노래를 편곡한 작품 17, 작품 66과 특히

〈노르웨이 농민 춤곡 슬로터〉 작품 72는 리듬과 화성에 대한 그의 예리한 감각을

 보여준다. 성악곡은 A. O. 비녜의 가사에 곡을 붙인 작품 33과 시가

산의 요정 Haugtussa〉 작품 67이 있는데, 이 작품들에서 그리그는 시의 정서를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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