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저녁에 인천공항을 떠나 자정이 가까워 다낭에 도착해 호텔로 와 곧 잠들었기에 오늘이 두번째
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베트남에서의 첫날과 마찬가지이므로 오늘(3월9일)을 첫날 (Day 1)이라고 하겠다.
하여간 베트남에서의 첫날은 벨아미 리조트에서 늦잠을 자고 풀장에서 수영하고 산책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후 점심때 다 되어서 인근 선상 식당으로 점심을 하러 떠나는 것이 첫 일정이였다.
말은 선상 식당이지만 강가에 선박 모양의 구조물을 만든 식당으로 엔진과 모터는 없는 모양만의
선박이였지만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래도 물에 떠 있으니 선상식당은 맞다고 한다.
초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바람이 솔솔 부는 선박 데크에서 맛있는 점심은 역시 홍콩에서 먹던
베트남 음식 그대로여서 오랫만에 즐거운 베트남 식사가 되었다.
선상 식당에서 오찬을
다낭시는 남중국해에 면한 주요항구 도시로 오래전부터 동서무역의 국제무역항으로 발전한 베트남 중부지역의 최대 상업도시이다.
다낭의 도심을 흐르는 한강(Song Han)을 사이에 두고 동부 남중국해에 면한 선짜반도와 시가지로 구분된다.
역사적으로는 참파왕국의 중요한 거점지역이었고 1858년 프랑스에 점령당한 시대에는 안남 왕국 내의 프랑스 직할 식민구역으로
투란(Tourane)이라고 하였다. 1965년 3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파견군이 이 항구를 상륙지점으로 하였고, 또 한국의 청룡부대가
주둔하였던 곳이다. 부근에는 참파왕국의 유적인 미선유적지가 있고 다낭 시내에는 참파의 유물을 보존하는 참박물관과 함께
석조물 300여점이 남아 있다.
다낭 시내에서 자동차도 20여분 거리에는 5개의 작은 산으로 이루어진 오행산이 있는데 이곳에서 대리석이 생산된다.
최근 다낭의 해안선을 구성하는 차이나비치에는 외국자본의 고급리조트가 들어서고 있으며, 관광객이 증가하는 추세다. (두산백과)
엔진과 모터가 있는 선박은 아니지만 물위에 있으니 선상 식당은 맞는가 보다
친절히 서빙하고 있는 콩까이
맛있는 식사 후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미선 유적지로 향했다.
참파 왕국의 성지인 미선 유적은 호이안에서 약 30km, 투본 강 유역 정글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참파 왕국은 한때 캄보디아로 원정해 앙코르왕국을 점령하는 등 동남아시아 힌두교 문화권을 대표하는 나라였다.
4세기부터 13세기까지 무려 9백여 년간 참파 왕국의 종교적인 성지였던 미선 유적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다른
힌두교 유적인 앙코르와트, 바간, 아유타르, 보로부드르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결코 뒤지지 않는 가치를 지닌 곳이다.
전성기 참파 왕국의 수도는 미선 유적에서 20km 가량 떨어진 짜끼에우(Trakiew/당시 명칭은 Simhapura)였으나
미선 유적이야말로 참파 왕국의 정신적인 수도라고 할 만하다.
미선 유적은 높이 솟은 성스러운 산인 마하파르바타 산 아래에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중앙, 정글 속에 70여 개의 유적이 감춰져 있다.
미선 유적의 역사는 4세기 말 참파 왕국의 바드라바르만 왕이 힌두교의 파괴와
창조의 신인 시바를 모시는 목조 사당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벽돌 건물로 8세기부터 13세기말까지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미선 유적은 일반적으로 알파벳 그룹으로 분류하는데, 볼만한 것은
B, C, D 그룹이고 A, E, F, G 그룹의 유적 대부분은 베트남 전쟁 때 파괴되었다.
그런데 왜 안내판의 글씨가 옆으로 누웠는지.....
마치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를 보는 기분이지만 규모나 섬세한 세공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그나마 일부는 물에 잠기고 대부분 전쟁시 미군의 융단 폭격으로 파괴되어 별로 남은것이 없는 편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공이 이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미군기의 폭격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아치형으로 상부를 지탱하는 건축 구조에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벽돌을 끼워 맞추는 건축기법이 사용되었다.
장식 문양은 건물을 지은 뒤에 새겨 넣은 것으로 다른 동남아시아 문화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것이 많다.
폐허에 가까운 유적들에서도 벽면에 장식된 조각상과 곳곳에 놓인 석상 등을 통해 참파 왕국의 높은 문화 수준을 느낄 수 있다.
시바 여신상 등 유적 중 상당 부분은 다낭의 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미선 유적이 형성된 시기에는 동일 지역에
종교건축물이 연속적으로 지어지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학술적인 가치도 큰 곳이다.
9백 년의 유구한 세월 동안 형성된 미선 유적은 이 곳을 찾는 누구에게나 종교적인 기운과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동남아시아 전역과 교류하며 위세를 떨쳤던 참파 왕국은 스러지고, 참족은 베트남 내에서 소수민족이 되었지만 미선 유적의
신비로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복원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가랑비가 살짝 뿌려 일부 관광객들은 월남 모자를 사서 쓰고 있다.
앙코르 와트의 축소판을 보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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