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Romantic) 음악 / 후기 낭만파 -
Mahler
또한 후기 낭만기에는 말러(1860∼1911)·브루크너(1824∼1896)·R .슈트라우스(18641∼1949)
등에 의해 교향시와 교향곡은 더욱새로운 경지로 발달하였다.
브람스는 지나친 표제적 경향을 피하여 고전적 형식을 계승함으로써 신고전파의 음악을 낳았으며,
생상스(1835∼1921)는 프랑스의 독자적인 음악 문화를 쌓으려고 노력하였다.
Symphony No. 4 in G major
제4악장 / 사장조. 4/4박자.
Elisabeth Schwarzkopf, Soprano
Otto Klemperer, Conductor
Philharmonia Orchestra
Das Lied von der Erde: Mov. 1
Mahler의 대표곡 모음
1. Symphony No 2 in C minor Resurrection - IV. Urlicht Sehr feierlich, aber schlicht Waldhung 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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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음악을 깊이 알고자 한다면 우선 그의 '정신 세계'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의 이면에는 그의 개성이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러의 종교적 및 철학적 사상은 전체적인 그의 작품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종교적 감정, 주변 세계에 대한 시각, 미학적 관점 등 말러의 모든 사상들은 그의 음악 속에 녹아들어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말러는 1860년 7월 7일 보헤미아의 칼리슈트에서 유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유태인이었으나 항상 그리스도교인이 되고 싶어하다가 37세 되던 해에 결국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카톨릭의 신비주의와 종말론에 심취했다. 그렇지만 유태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다같이 묘한 균형을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는 평생 동안 유태인 태생이라는 상처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리스도교 사회에 융화하려고 애썼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는 사람이어서, 오스트리아에 가면 나를 보헤미안이라 하고, 독일에 가면
오스트리아인이라 하고, 보헤미아로 돌아가면 유태인이라고 한다.“
이렇듯 자신의 출생 배경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를 가졌던 말러는 어린 시절에도 결코 행복하지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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