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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 성당 (2011.11.16)

by DAVID2 2012. 4. 7.
 

공세리 성당이 위치한 1만 여평의 부지는 예로부터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가 있던 공세곶 창고지로써 조선조 성종 9년 (1478년)에 세곡 해운창을 설치 운영해 오다가

 중종 18년 (1523년)에 80칸의 창고를 짓고 영조 38년 (1762년)에 폐창이 될때까지

근 300년 동안 운영되었던 공세창고였다고 한다.
지금은 아산만 방조제 공사로 바다에서 떨어져 있지만 예전에는 바닷가 항구로서 서울이나 타지로

물류 이동이 편리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교류도 빈번했던 곳이였기 때문이다.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중


 

수백년생 느티나무에서

공세리 성당 정면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마지막 처인 14처에서

피정의 집 앞에서


 



32위 현양비 앞에서 기도중인 일행들

박물관 앞에서







지금 60대를 넘은 분들은 한때 상처와 종기에 특효약이던 이명래 고약을 기억하실것이다.
그고약이 맨처음 만들어 보급된 곳이 바로 공세리 성당이다.

1895년에 이곳에 부임한 에밀 드비즈 (한국명 성일론) 신부님이 프랑스에서 배우고 익힌
방법으로 원료를 구입해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주게 된다.
그 비법을 당시 신부님을 도와드렸던 이명래(효한)에게 전수아여 이명래 고약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보급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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