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CGV 송파관에서 요즘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국제시장을 보았다.
실로 오랜만의 영화관 방문이다.
가장 최근에 영화관에 갔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인데 아무래도 4~5년은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젊었을땐 한때 취미 하면 음악감상과 더불어 영화감상이라고 했었는데 어쩌다 영화와 이렇게 멀어졌는지....
사실 영화와 멀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일주일간 4편의 영화를 봤으니..
백발의 연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오리지널 TV 판), Million Dollar Baby, 밀양
그리고 국제시장의 4편을.
나의 음악 취향이 60~70년대의 올드 팝을 제일 좋아하듯 영화도 50~80년대의 흘러간 명화들을
좋아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Ben Hur', 'It's A Wonderful Life', 'Best Years of Our Lives',
'기적' 같이 소박하고 순수한 영화들을.
그런데 요즘 영화들은 하나같이 공상과 환상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정신을 빼는(?)
영화들이 주종이라 자연히 영화관에 가는것도 멀어지고 영화를 보고 싶으면 내가 소장하고 있는
총 200편이 넘는 소장품 (비디오 테이프, VCD, 및 DVD)으로 집에서 보거나 비디오, DVD를 빌려다가,
그리고 근래에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보는 것으로 형태가 바뀌어 영화관에 가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물론 입체영화다 특수효과다 하는 점에서는 집에서 보는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서 한때는 오디오 앰프 두세트에 스피커 6대를 연결하는 써라운드 시스템을 갖추기도
하였는데 이사할때마다 너무 번거로워 Home Theater System으로 교체하였다.
Bose 시스템으로 바꿨더니 자리도 적게 차지할 뿐 아니라 그런데로 소규모 극장에서
보는 정도의 효과는 누릴수 있다.
그나마 한국영화는 더더욱 영화관에서 본것이 거의 없다. 관객 천만 동원이다, 대작이다 하고
큰 인기를 얻었던 영화들도 영화관에 가서 보면은 실망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엔 갖고 있던 송파 CGV
무료주차권이 내일로 만기가 되고, 지난 동창회에서 문화상품권을 받아 이번에도 또한번 속는셈치고
한번 더 다녀왔다. 그런데 이번에 본 '국제시장'은 그간 보아왔던 우리 영화하고는 달랐다.
스토리는 내가 살아오면서 직접 듣고 보던 내용으로 새로운 것은 없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의 전개였지만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는 내용으로 정말 우리 영화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케 하였다.
물론 젊은 세대를 비롯해 일부 관람객들에게는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기성세대의 신세타령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조선일보 김명환 기자의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예고편
'국제시장', 모진 세월 살아낸 아버지들에 바친 헌사
<전쟁-가난 겪고 서독 탄광, 월남전 현장 등에서 땀 흘리며 살아온 사내의 일대기
지도자의 역사 아닌 서민들 땀방울의 역사로 과거 돌아본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한국전쟁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우리 역사 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온 한 남자의
일대기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이룬 ’산업화 세력‘의 공로에 대한 칭송처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음미해 보면 ’국제시장’은 좌·우 어느 편으로 가르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지난 시대 우리의 역사를 ‘탁월한 영도력이 이끈 역사’로 보기보다는 말단에서 땀흘린 사람들이
만들어 낸 성과로 바라봅니다.
6.25 전쟁이 터진 1950년 '흥남철수'때 숱한 피란민들이 뒤엉킨 부두에서 미군배에 올라탔다가
여동생을 찾으려고 다시 배를 내려 가려는 아버지(정진영)가 어린 아들 덕수을 안고 있다.
소년은 배고픔 속에 지내며 미군 지프가 오면 “쪼꼬레또 기브 미”하며 손을 벌립니다. 힘겨운 삶이 시작됩니다.
감독도 말했듯 이 영화는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입니다.
한 남자의 일생과 미국 역사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큰 그림을 그려낸 ‘포레스트 검프’처럼,
‘국제시장’에서도 한국 현대사의 고통스런 현장마다 어김없이 덕수가 있습니다.
전쟁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소년은 전쟁 후엔 서독에 광부로 취업해 이역 만리 탄광 갱도에서 탄가루를
흠뻑 마시고, 월남전이 터지자 근로자로 돈벌러 가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리를 다칩니다.
몸 하나로 버티는 그의 옆엔 단짝 친구 달구(오달수)가 늘 함께 합니다.
덕수(황정민)와 친구 달구(오달수)는 돈을 벌기 위해 서독의 탄광에 광부로 취업해
찐 감자 한 알로 허기를 달래며 탄가루를 마신다.
덕수의 삶이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기에 울림이 큽니다.
그는 독일에서 광부로 일할 때 간호사로 파견 온 아내 영자(김윤진)를 만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행복을 누리거나 삶을 즐기는 모습은 없습니다.
그는 선장이 되려던 꿈도 접고 그저 가족 생계 책임지느라 수십 년 간 소처럼 일만 합니다.
파독 광부가 된 것도 서울대에 합격한 동생 학비를 벌기 위한 것이었고,
월남에는 여동생 시집 보낼 돈을 마련하려 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덕수는 누굴 원망하기는 커녕 오히려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이 놈의 전쟁을, 이 독일 광부 생활을, 월남에서의 고생을 내가 겪었으니 다행이지,
우리 새끼들이 겪었으면 어쩔뻔 했어…“.
삶이 다행이라고만 말하던 덕수지만 힘들 땐 헤어진 아버지 사진 액자 붙들고
"아부지, 내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속마음을 토로합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한없이 존경스럽기도 한 아버지의 모습이 관객 마음을 흔듭니다.
덕수(황정민)가 영자(김윤진)와 옥신각신 다투다가 '국기 강하식'이 시작되자 모든 일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권위주의 시대의 풍경들은 우스꽝스럽게 영화에 등장한다.
이름없는 영웅을 조명하는 영화이기에 ‘국제시장’에서는 시대의 권력자들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이승만은 라디오 연설 목소리만 잠깐 나오지만, 서독 광부 파견과 월남 참전의 시대를 핵심에 놓았으면서도
그 시대를 이끈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은 전혀 없습니다.
그 대신 영화는 박정희 정권 시절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시대의 풍경 묘사를 빼놓지 않습니다.
파독 광부 선발을 위한 면접에서 달구가 ‘국가관 투철’을 과시하려고 과장된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덕수가 영자와 길에서 다투다가도 국기 강하식 음악이 울려퍼지자 일어서서 나란히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며 그 시대의 우리나라 체제를 살짝 조롱합니다.
서독의 한국 간호사들은 ‘동양에서 온 천사’로 칭송받았다지만, 이 영화 속 간호사 영자의 일이란
시체를 닦는 일입니다. 극중 파독 광부는 삶은 감자 한 알로 허기를 메우며 일하다 폭발사고로 탄가루가
목구멍에 꽉차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듭니다.
‘자랑스런 산업역군’이라는 식의 홍보영화적 관점과는 거리를 둡니다.
유머의 부자연스런 배치 등 몇몇 흠결에도 불구하고, 물 오른 황정민의 열연이 관객들 마음을 빨아들입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찬 흥남부두’의 생지옥같은 철수 장면을 웅장하게 재현한 오프닝부터 부산 국제시장 모습의
시대별 변천까지를 세심하게 표현해 낸 디지털 특수영상과 세트, 촬영, 의상 등 비주얼 부분의 성과 또한 역동적입니다.
”외국에 가서 ‘네 배를 만들어 줄테니 돈을 다오’ 하겠다“는 청년 사업가(정주영), 국제시장에 옷감 끊으러 왔다가
수놓은 한복감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젊은 사장 김봉남(앙드레 김), 월남에 참전해 총을 잡은 가수 (남진) 등
영화 사이사이에 ‘숨은 그림’처럼 삽입된 대한민국 유명인들의 젊은날을 발견하는 것도 잔재미입니다.
‘국제시장‘은 오늘의 노년층이 겪었을,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에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손마디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박박 기며 모진 세월을 헤쳐 온 우리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獻辭)같은
작품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스크린을 통해 돌아보니 어느 틈에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런 게 영화의 힘이겠지요.
<2014.12.20 13:40 조선일보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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