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여자 홍옥희가 해설하는 명화 산책, 오늘은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소개합니다. KTV가 금년 1월 11일 방영한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내용입니다.
앵그르 / 그랑드 오달리스크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 La Grande Odalisque 1814, 르브르 박물관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를 이어 신고전주의의 리더가 된 앵그르의 대표작이다. 오달리스크는 터키어 오달릭(odalik)에서 유래한 말로, 터키 황제의 시중을 드는 여자 노예를 일컫는다. 이는 서구 사회에서 널리 유행하던 오리앤탈리즘(orientalism: 동방 세계에 대한 동경과 취미)의 주된 주제로서, 19세기 서양미술에 자주 등장했다. 이 작품은 1814년, 나폴레옹의 여동생 캐롤린 뮈라(Caroline Murat)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것이다. 1819년 《그랑드 오달리스크》가 살롱에 출품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서구 미술의 오랜 주제였던 누드화의 전통과 연관시켰다. 이들은 특히 티치아노 (Tiziano Vecellio, 1488-1576)의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1537-1538)와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연결시켰는데, 앵그르는 이와 같은 평가를 의식해서인지 1822년 실제로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모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 영향을 준 보다 직접적인 작품은 앵그르가 보조 역할을 한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Madame Récamier)》(1800)이라고 할 수 있다. 왼쪽 팔로 상체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비스듬하게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오달리스크의 모습은 레카미에 부인의 포즈와 매우 닮아있다. (유정아/서울대학교 강사)
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앵그르는 역사화에서 니콜라 푸생과 자크 루이 다비드의 전통을 따랐으나, 말년의 초상화는 위대한 유산으로 인정 받고 있다. 18년간 로마에서 옛 그림을 연구하였으며, 특히 라파엘로에 심취하였다. 그 후 귀국하여 고전파의 대가로서 환영을 받았으며 르누아르·드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과거를 깊이 중시했던 앵그르는, 한창 떠오르던 외젠 들라크루아의 양식을 대표하는 낭만주의에 맞서 아카데미의 정통성을 전적으로 옹호했다. 그가 언급했던, 그의 모범상은 라파엘로가 영속적이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예술의 장엄한 영역을 정립한 때인 영광스러운 기억의 세기의 꽃을 피운 위대한 거장들이었다. 그는 '혁신가'가 아닌 좋은 예술체계의 '보존자'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앵그르와 당시의 다른 고전주의자들이 당대의 낭만적 정신을 구체화했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앵그르는 인상적인 공간과 형태의 왜곡으로 현대 예술의 주요한 선구자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리뷔에르 부인의 초상> <목욕하는 여자> <터키 목욕탕> 등이 있다. <위키백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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