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클래식

Gluck / Orfeo ed Euridice

by DAVID2 2012. 7. 17.

 

 

 

Gluck / Orfeo ed Euridice


Che faro senza Euridice Che
3막 아리아 "에우리디체를 잃고

 Luciano Pavarotti, tenor

 

Janet Baker, Mezzo-sop


Orfeo e Euridice (Ouverture)

James Levine conducting Metropolitan Opera House, New York

 
Orfeo ed Euridice 주요장면

Metropolitan Opera House

Conductor: James Levine

Dance of the Blessed Spirits



Jennifer Larmore / Che faro senza Euridice

 

Christoph Williald von Gluck (1714-1787)
독일의 작곡가.
소년시절 보헤미아에서 음악교육을 받고, 18세 때 프라하에 유학하여 체르노호르스키에게

 사사하였다. 1737년에는 이탈리아에 유학, 삼마르티니의 제자가 되어 오페라 양식을

익혔다. 그후 런던을 거쳐 빈에 갔으며, 그곳에서 당시 가장 유명한 대본작가인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으로 몇 편의 오페라를 써서 성공,작곡가로서의 지반을 굳혔다.
그러나 1750년대 중반부터는 점차 프랑스풍의 오페라에 접근하였으며, 1761년 혁신적인 

대본작가 칼차비지를 만나게 되면서부터는 새로운 오페라를 창작하기로 결심하였다.

1762년 빈에서 상연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Orfeo ed Euridice'를 시작으로 그는

종전까지의 틀에 박힌 이탈리아오페라에서 벗어나 음악극의 성격을 지닌 새로운 오페라를

개척하였다.그후 이탈리아의 오페라 애호가가 피치니를 나폴리에서 불러와 파리에서

글루크와 대립시킨 글루크피치니논쟁에 이김으로써 그의 지위는 확고 부동해졌으며

그 영광 속에서 생애를 마쳤다.

글루크가 오페라사(史)에서 세운 업적은 바로크오페라의 특색이었던 가수의 우위(優位),

유형적(類型的)인 음악, 황당무계한 대본 등을 배제하고, 음악과 극을 보다 밀접하게

결합시킨 동시에 불필요한 장식을 없앰으로써 오페라를 창작 당시의 이상에

접근시킨데 있으며, 그의 오페라는 그후 근대작품의 출발점이 되었다.

1787년 11월15일 빈에서 뇌졸중으로 죽었다.
작품으로 아울리데의 이피게니 Inie en Aulide(1774), 아르미드 Armide(1777) 등이

유명하다.


Orfeo 와 Euridice (Ducis Louis 그림)

음악의신  태양의신인 아폴론이 현악기의 신인 칼리오레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오르페우스이다음악의 신 아폴론 한테서 물려 받은 수금을 타는 오르페우스의 솜씨는

온 만물이 다 놀랄 정도였다.

성난 짐승도 그 가락을 들으면 조용히 와서 귀를 기울일 정도 였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에우리디케 라는 처녀와 결혼을 했다 어느날 에우리디케는 친구들과 함께

들로 꽃을 꺽으러 갔다가 에우리디케의 미모에 반한 양치기 아리스타이오스가 다가 오자

결혼한지 10일도 되지 않은 에우리디케는 도망가다 그만 독사에게 발을 물려 죽게 된다
저승으로간 신부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멀고 험한 저승 세계로 찾어가서 인연이다하는

날까지 함께 살다 다시 자기도 함께 저승으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에우리디케를

데려 온다는 이야기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