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일요일 수원화성에 다녀왔다.
수원화성은 2012년 처음 가본 이래 너무나도 멋진 모습에 반해 그후엔 매년
한번 이상은 다녀오는 곳인데 야경 또한 멋지다고 해 처음으로 야간에 다녀왔다.
야간 촬영을 나갈때는 주로 일요일 밤에 출사를 나가는데 평일에는 퇴근자들로
인해 그리고 토요일엔 가족단위로 외출하는 사람들이 많아 교통이나 식당등
시설들이 복잡한데 비해 일요일 저녁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음날 출근을
위해 일찍 귀가하여 가장 한가로운 편이라 주로 일요일 밤을 이용하는 편이다.
사진이 많아 3회에 나눠 올리는데 두번째 포스팅으로는 장안문과 화서문,
세번째 포스팅으로는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부근을 내일 올리고 나머지 사진들은
오늘 첫번째 포스팅으로 올린다(다만 동영상은 전체를 2편으로 나누어 한편씩 올린다).
사진에 설명을 달은 이름과 내용은 기억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달았는데 워낙 이름들이
난해하고 비슷해 혼동되어 틀린 설명이 있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 화성은 조선 정조대 역작품으로 총 길이 5.7Km, 면적 1.2제곱Km에 달한다.
정조는 당쟁의 여파로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花山)의
현륭능으로 옮기고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 넓은 기슭으로 이전하였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수원을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위해 당시 30세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에게 자신의 야망을
구현시킬 대역사를 맡기게 되었다.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공사는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어 1796년 10월, 단 34개월(중간의 6개월
정역(停役)을 생각하면 28개월)만에 낙성연을 치렀는데 수원 화성과 같이 방대한 공사를 2년 반이라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실학자인 정약용과 같은 젊은 피를 수혈하여
종전과 차원이 다른 계획에 따라 건설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본 창룡문 성곽과 그위의 열기구
연무대 광장 옆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비석
수원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蒼龍門)
음양오행설에서 푸를 '창'자가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크게 소실된 것을 1978년 복원하였다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공심돈은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지은 망루와 같은 곳으로 동북공심돈은
동문인 창룡문의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른 공심돈과 달리 성벽을 쌓은 안쪽에 건조되었다.
연무대(東將臺)
장대는 성곽 일대를 조망하면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일종의 지휘소 같은 곳으로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연무대) 두 곳이 있다.
성곽 안쪽길
연무대 광장에서 본 창룡문
연무대(東將臺)
연무대는 이미 문이 잠겨있어 그 앞의 카페 2층에서 담은 사진이다
담너머로 담은 연무대(東將臺)
창룡문, 국궁체험장 그리고 관광안내소
연무대와 창룡문
화성과 수원시내
동암문에서 동북포루를 배경으로
암문은 성 깊숙한 곳에 적이 찾지 못하도록 설치를 해서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일종의 비밀의 문으로 화성에는 동암문, 북암문, 서암문, 남암문, 서남암문 등의 5개의 암문이 있다
동북포루(東北舖樓 또는 각건대)
1796년 (정조 20년) 5월 15일 준공되었다. 포루는 치성 위에 누각을 세운 것으로 치성의 군사들을
가려 적이 아군의 동향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세운 성제의 하나이다.
동북포루(각건대)
북동포루
성곽에서 본 북동포루, 방화수류정(동북각루) 그리고 동북포루
북포루
북서포루
화성복원정화기념비
북서포루
화서공원과 장안공원 사이
장안문 근처에서 본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
연무대로 다시 돌아오면서 본 성곽길
연무대(동장대)
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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