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바래봉에 다녀오는 길에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두산리 산 3에 위치하고 있는 논개사당인 의암사에 들렸다.
나름대로 아담한 건축물에 아래에 펼쳐져 있는 의암호도 아름다웠으나 시간 관계상 오래 머물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고 그리고 빠른 손놀림으로 사진만 열심히 찍고 돌아서야 했다.
다음에 다시 한번 갈 기회가 있다면 오랜 시간을 머물면서 논개의 발자취를 음미하며 여유롭게
의암호를 산책하고 충혼탑까지 꼭 한번 오르고 싶다.
논개사당 의암사
임진왜란 중에 진주성에서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논개라는 인물에 대해 기생으로 아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전북 장수 출신으로 서당 훈장의 딸로 태어났으며 성은 주씨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죽자 작은아버지가 부잣집의 민며느리로 팔아버리는데 어머니가 논개를 데리고 도망을 치지만 곧 잡혀
재판을 받게 된다. 그때 판결을 맡았던 사람이 장수 수령 최경희로 사정을 안타깝게 여겨 이 모녀를 거두어 관에서 일을 하게 한다.
곧 어머니도 죽고 고아가 된 논개는 이후 최경희가 옮기는 곳마다 따라다니다 나이가 들어 그의 소실이 된다.
임진왜란 때 최경희가 경상우병사로 진주성전투에 참가하게 되면서 논개도 진주로 왔다. 첫 번째 진주성전투는
조선군이 승리를 하지만, 이듬해에 다시 일본군이 쳐들어 온 2차 진주성전투에서는 왜군이 승리한다. 이때 논개가
진주성에서 벌이던 왜장들의 축하연에 기생으로 가장해 적장을 껴안고 남강으로 투신하여 순절했다는 이야기이다.
진주성에도 논개의 사당이 있지만 논개가 태어난 장수에도 논개 사당인 의암사가 있다.
작은 사당과 함께 논개의 일생을 알려 주는 전시관이 있으며 정자가 있어 앞으로 펼쳐진 시원한 호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진주성 의기사와 이곳의 논개 영정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것으로 그의 친일 행적이 논개의 의기로움을 헤친다 하여
의기사의 영정을 떼어내는 일이 벌어졌는데 최근에 논개의 영정이 다시 그려져 논개의 정신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출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의암사 이름이 새겨진 큰 돌
입구에서 본 의암사 첫 관문
논개사당 의암사의 설명 안내판
의암사 기념관
의암사 (안에 논개의 초상화가 있다)
의암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수
논개
의기 주씨 또는 의기 신안주씨는 조선 선조 때의 관기이다. (최근에는 논개가 기생이 아니라
왜장을 암살하기 위해 기생으로 변장해 접근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장을 꾀어내어 그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흔히 논개라 불리는 이유는, 이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붙였으리라 여겨진다.
주달문과 밀양박씨의 딸이며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첩이었다. 본관은 신안.
의암사 입구에서 본 의암사 전경
의암사 앞에 있는 의암호
의암호의 다리
6.25 전사자를 위한 충혼탑
돌아오는 길에 잡아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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