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여행의 2일차 첫일정은 조식을 한후 만리장성의 방문이였다.
숙소인 Pullman 호텔에서 약 1시간 반을 버스로 이동하여 북경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들르는 팔달령장성에 도착하였다.
항상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고 하는데 오늘따라 주말이라 그런지 유난히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힘들이지 않고 구경할수 있었다.
입구와 주차장을 지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만리장성을 들러보는 동영상
만리장성 입구
입구의 기념품점들
입구에서 올려다 보이는 케이블카
만리장성(萬里長城, 완리창청)은 흉노족 등의 북방 민족을 막기 위해 BC 208년 전국 시대 때 제나라에 의해 처음 착공된 후
중국의 고대 진(시황제)때까지 세워져 현재까지 존재하는 오래된 성곽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이며 세계문화유산이자 국가 5A급 관광지로 국가중점문물보호물(단위)이다.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바다링창청(八达岭长城, 팔달령장성)은 국가중점경관명승지로 “중국 관광 명승지 40선”의
으뜸이라 할 수 있으며, 전국 문명 여행 풍경 시범구이다.
시내로부터 60킬로미터 떨어진 옌칭셴(延庆县, 연경현) 경내에 위치해 있으며, 바다링(八达岭, 팔달령)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바로 도착할 수 있다.
케이블카에서 셀프샷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내려다 보이는 만리장성의 일부
만리장성이 현재 위치에 처음 축성된 것은 6세기 북제(北齊) 시대다.
처음 건축될 무렵에는 산시성山西省) 리스 현부터 보하이 만까지 약 1,500km 길이였다.
이후 명(明) 나라 때 총 길이 2,700km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꼬리를 이은 등정객들의 줄
내가 들고 있는것은 총이 아니라 캠코더^^
명 나라는 15세기~16세기에 만리장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북방에 있던 몽고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북방민족인 만주족이 세운 청 왕조에서는 군사적 가치가 없어 방치되어 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때 관광 목적으로 보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간부분의 구조물이 케이블카 탑승하는 곳이다.
뒷면의 만리장성을 다 가려버려서...
만리장성 2,700km가 똑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쪽보다는 동쪽이 견고하게 축성되어 있다.
성을 쌓은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이것을 불에 구운 전(塼), 그리고 돌 등인데 동쪽으로 갈수록 더 단단한 재료를 사용했다.
성벽은 높이 6∼9m, 평균 폭은 위쪽 4.5m, 아래쪽 9m이다. 100여 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예전에 방문했을땐 한가로이 산책할 수 있었건만 요즘은 엄청 붐빈다고 한다.
중국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많이 향상되어 각처에서 북경관광을 오기 때문이다.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을 쌓은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왕조의 성격에 따라 만리장성의 중요성이나 만리장성에 쏟는 정성도 달라졌다왕조가 공격적이었던 시기보다는
방어적이었던 시대에 만리장성은 더욱 중시되었다. 북방 경영에 열심이었던 당나라 때나 전 세계를 무대로 침략전쟁을 벌였던
몽고제국과 뒤이은 원나라만주에서 일어나서 만리장성 너머까지 다스렸던 청나라 때는 그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고
따라서 개보수 작업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만리장성은 군사적인 역할 이외에 문화적으로는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에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해서 방어벽으로서 역할은 크지 않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하지만
그 실효성에 관계없이 오늘날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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