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지막으로 수원화성의 사대문을 비롯해 총 48개의 시설물에 관한 포스팅을 올린다.
남문인 팔달문에서 서쪽 성벽을 타고 북문인 장안문까지의 일정을 먼저 올리고 2차로는
북동적대에서부터 동문인 창룡문을 거쳐 동남각루를 통해 종로 사거리로 내려오는 코스를 올린다.
각종 시설물의 명칭과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기 어려워 인터넷 자료를 참고하였는데 혹시라도
잘못된 설명이 있으면 덧글로 지적해 주시면 고맙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 화성은 조선 정조대 역작품으로 총 길이 5.7킬로미터, 면적 1.2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정조는 당쟁의 여파로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花山)의
현륭능으로 옮기고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 넓은 기슭으로 이전하였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수원을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위해 당시 30세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에게 자신의 야망을
구현시킬 대역사를 맡기게 되었다.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공사는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어 1796년 10월, 단 34개월(중간의 6개월
정역(停役)을 생각하면 28개월)만에 낙성연을 치렀는데 수원 화성과 같이 방대한 공사를 2년 반이라는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실학자인 정약용과 같은 젊은 피를 수혈하여
종전과 차원이 다른 계획에 따라 건설했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의 최남단 남문인 팔달문 (북쪽에서 본 모습 )
서울의 숭례문보다 규모가 더 큰 보물 제 402호이다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대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문이며,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통과한 문이다. 1794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15일에 완공하였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의 의미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팔달문 밖에서 천주교인을 공개적으로 장살형(때려죽이는 사형법)이 집행된 장소이다.
남서 방향에서 본 팔달문
팔달문 서쪽 방향의 화성 출입구와 매표소
화성 서쪽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 부근에 설치되어 있는 홍난파의 '고향의 봄' 노래비
남포루에서 서장대로 오르는 길
서남암문
암문은 성이 포위되었을 때 구원을 요청하는 비밀 문으로 평소에는 가축이나 식량, 군수품을 조달하는 통로로 사용되었다.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쪽 성벽에 자리잡고 있는 수원화성 종합안내소
수원화성 종합안내소 연결 통로
서포루
포루날 치성위에 있는 누각으로 군사대기소의 역활을 하던 곳이다.
효원의 종각
화성장대 (서장대라고도 한다)
서노대와 서장대
노대는 공격과 방어를 위한 시설물이고 장대는 군사지휘소이다
서장대 언덕에서 내려다 본 행궁
군사지휘소로 사용된 서장대의 늠름한 모습
서장대와 서노대
서노대에서 내려다 본 서장대
서일치였는지 서이치였는지?
성벽 밖으로 보이는 수원 시내
서북각루
화성의 4개의 각루중 한곳으로 각루란 성곽보다 높은 곳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성벽 밖의 화서공원
서북각루
화서문 (우측)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중 하나로 서쪽에 있는 서문이다. 성문 바깥쪽으로 본성인 화서문을 옹위하기 위해
옹성이 설치되어 있고 창룡문처럼 한쪽편이 밖으로 개방되어 있다. 6.25사변을 거치면서도 엣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문으로 축성당시 건축에 참여한 책임자들의 이름이 축대돌에 새겨져 있다.
서북공심돈(좌측)
동북공심돈과 하께 화성의 두개의 공심돈 중 하나로 내부가 비어있고 나선형 모습으로 되어 있어
소라각이라고도 한다. 일종의 망루로서 수비와 공격을 할수 있다.
화서문 상단
화서문 내부
화서문
천주교도 박해시대에 가까이 있던 사형터에서 처형된 수많은 천주교신자들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나간 문으로
일명 시구문이라고도 한다. 순교자들의 시신이 화서문을 통과해 인근의 숙지산, 여기산 등지에 매몰되었다.
서북공심돈
북포루
포루란 치성위에 있는 누각으로 군사대기소의 역활을 하였다.
장안문 내부
장안문
수원 화성 북쪽 출입문인 장안문은 서울의 숭례문보다 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정조 18년(1794년) 건축되었다
서울에서 오는 길과 연결된 장안문은 그래서 특이하게 북문임에도 정문으로 여겨지는 성문이다.
바깥쪽에는 옹성이 있고 팔달문과 함께 옹성에 별도의 출입문이 있다는 것이 화서문이나 창룡문과는 다르다.
천주교인들을 공개적으로 때려죽이는 장살형이 집행된 장소이기도 하다.
장안문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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