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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좋은글

집을 짓는 순서

by DAVID2 2014. 8. 11.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그동안 내가 그려온 순서와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완전히 거꾸로였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리는 것이 아닌가.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바로 집을 짓는 순서였다.
일하는 사람이 그린 그림이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다.
나의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처절한 낭패감을 맛보아야 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다가 ‘건축’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한동안 그 노인의 얼굴을 상기한다.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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