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첫째날 실로 오랫만에 종묘에 다녀왔다.
수십년전 한두번 다녀온 이래 처음인데 오래전 기억에는 종묘가 그다지 볼거리도 없고 멋있지도
않다는 점이 그간 다시 방문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던것 같다.
그런데 다시한번 방문해 보니 시설과 건물들, 그리고 전시된 내용물들이 진정으로 멋지고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유교적 전통과 왕실의 제레 문화를 몸소 느끼고 감동을 받고 왔다.
사진들이 많아 먼저 정전을 제회한 종묘의 모습을 올리고 종묘의 중심인 정전의 모습은 내일 올린다.
조선 왕조는 ‘유교’를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이념으로 삼고 유교의 예법에 따라 국가의 도읍지에
왕이 머무는 궁궐과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묘, 그리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필히 마련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조선을 세울 때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곳이 바로 종묘로 종묘는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조선 왕조의 유교적 전통인 왕실의 제례 문화를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 (내부 시설에 비해 정문이 좀 초라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설명하는 비
종묘 자체뿐 아니라 종묘에서 치르는 제사인 종묘 제례와 제례악도 무형 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내부에서 본 외대문
왕이 휴식을 취하던 망묘루
망묘루와 공민완 신당(오른쪽 문)
고려 제31대 왕이었던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정전이나 영녕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신당으로 이성계가 탔다는 말 그림이 있다. 조선 왕조를 세운 이성계를 발탁한 멘토인 공민왕에
대한 예의로 아성계가 종묘에 유일하게 고려의 왕 신당을 마련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공민왕 신당
공민왕 신당
망묘루 앞에서
재궁
재궁
왕이 머물렀던 어재실, 세자를 위한 세자재실, 왕이 몸을 청결히 했던 어목욕청의 세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재궁
재궁내 전시되어 있는 임금님이 종묘 안에서 타고 다니시던 작은 가마인 소여
재궁
종묘 제례에 사용할 음식을 만들었던 전사청
전사청
전사청 마당에는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했던 4개의 돌절구가 남아 있고, 전사청 밖에는 우물인 제정과
제례 음식을 검사하고 보관했던 찬막단과 희생대가 있다
제정 (우물)
제정 입구에서
전사청 앞의 찬막단
찬막단은 제례에 쓰일 음식을 검사하던 곳이다.
영녕전 동문
영녕전
영녕전
영녕전
정전은 지붕 전체가 일직선인데 비해 영녕전은 중앙 태실 부분이 한 단 높게 돌출되어 있다
영녕전에서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에서 부모까지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 4칸의 중앙 태실을 중심으로 동서로
각 6칸씩 마련된 영녕전은 정전에 비해 아담하여 편안함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주로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왕이나 재위 기간이 짧았던 왕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영녕전 서문
영녕전
영녕전
영녕전
영녕전
영녕전 담 밖에서
영년전 정문
특이하게 생긴 귀룽나무
귀룽나무
종묘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머물던 악공청
신로
신로는 죽은 왕과 왕비의 혼령만 다닐 수 있는 길로 왕도 다닐 수 없었던 곳이다
향대천 앞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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