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의 두번째 포스팅으로 국내 최대의 목조 건물이자 종묘의 엑기스라 할 수 있는 정전의 모습을 올린다.
조선은 유교를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았던 왕조였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체로 분리되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체는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의지할 수 있도록
신주라는 상징물을 만들어 보관 했다. 이러한 조선 왕족들의 신주가 모셔진 곳이 바로 종묘로 흔히 사극을 보면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시고 훗날을 기약하소서!”라고 하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조선이 국가의 근본을
종묘와 사직에 두었다는 것을 증명하는바 종묘는 바로 조선 왕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재궁문을 나서면 만나는 정전 담벽
정전 동문
신주를 모신 정전 내부 태실을 재현해 놓은 곳
정전에 모셔진 신위 봉안도
정전에는 19칸의 태실에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를 비롯하여 왕 19명과 왕비 30명의 49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조선 왕조의 왕은 모두 27명이지만 공덕이 높은 19명의 왕과 그의 왕비들만 정전에 모셔져 있다.
동문
동문 옆의 전사청 앞뜰
정전의 동쪽 끝자락
정전
정전의 정면에서
정전의 서쪽
정전의 남문
정전 남문에서
공신당 (공을 세운 신하들의 위패를 모신 묘)
정전의 마당인 월대를 구성하고 있는 돌은 매우 거칠고 지면도 평탄하지 않은데 이는 경박스럽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지면이 평탄하지 않고 경사를 이룬 것은 비가 많이 내려도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혼령만 드나들수 있었던 남문
정전의 월대 위에서
제례악을 연주하던 악공과 무희들이 드나들던 서문
가로 길이가 101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 건물인 정전
서문
남문
정전의 마당인 월대를 구성하고 있는 매우 거칠은 돌들
이황을 비롯한 공신들이 모셔져 있는 신주를 모신 16칸짜리 공신당
공신당에 봉안된 공신들의 신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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