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기간중 다녀온 종묘의 경관중 종묘의 엑기스라고 할수 있는
정전과 영녕전만 따로 올린다.
정전의 동쪽 돌담
정전의 동문
정전 동문 앞에서
정전 돌담을 배경으로
정전 동문으로 들어서면서 만나는 정전의 모습
정전
정전은 왕과 왕비가 승하 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에 신주을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국보 제 227호로 지명되어 있다.
길게 펼쳐진 표청 월대는 안정을, 건물 전면에 무한하게 반복되은 듯한 기둥의 배열은
왕위의 영속을, 수평으로 하늘 끝까지 펼쳐지는 듯한 지붕은 무한을 상징하는데,
그 모습은 진정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를 이룬다.
정전의 동쪽
멋지고 위용이 있는 정전의 나무 기둥들
전사청(제사 음식을 마련하던 곳)과 오른쪽의 재정(제사용 우물)
정전의 대표적인 모습
신하들을 위한 정전 왼편의 공신당
공신당 기와지붕과 그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
정전
정전의 남신문에서 본 돌담
정전의 전경 (해설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비가 내리는 날 앞의 돌에 튀겨 오르는 빗물
사이로 보이는 정전의 모습은 절경이라고 함)
조선은 유교를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았던 왕조였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체로 분리되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체는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의지할 수 있도록 신주라는 상징물을 만들어 보관 했다.
이러한 조선 왕족들의 신주가 모셔진 곳이 바로 종묘로 흔히 사극을 보면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시고 훗날을 기약하소서!”라고 하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조선이 국가의 근본을
종묘와 사직에 두었다는 것을 증명하는바 종묘는 바로 조선 왕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정전의 왼쪽 모습
정전의 오른쪽 모습
정전의 서쪽 문
남신문(신주들이 정전으로 들어오는 문으로 왕이나 왕족들은 이곳으로 출입하지 않고
동문을 사용하였다고 함)
정전의 뒷쪽 모습
정전의 서쪽 출입문
고목들이 정말로 멋진데 이곳은 공원이나 궁궐과 달리 꽃나무등으로
아름답게 치장하지 않고 영혼들이 숲속에서 산책하라고 큰 나무들 중심으로 조경이 되었다고 함)
정전의 남신문
영녕전
영녕전은 세종떄 종묘에 모시던 태조의 4대 추존왕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그 왕비들의 신주를 옮겨 모시기 위해 세워진 별묘로 태조의 3대조를 비롯해
왕의 신주 16위, 왕비의 신주 18위가 모셔져 있다. 보물 제821호로 지정되어있다.
영녕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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